‘나의 소비 행위가 다른 사람, 사회, 환경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고려하여 소비하는 것’이라는 윤리적 소비의 정의를 접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한다. ‘와! 일상의 소비로 좋은 일을 할 수 있구나’ 그리고 곧, ‘그런데 어디서 하지? 이게 정말 효과가 있나? 돈이 많이 들지는 않을까? 어렵고 상품도 별로일 것 같아. 외국에서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잘 안될 것 같은데?’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을 발견했지만 아주 사소한 장벽과 낯섦에 사람들은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윤리적 소비 캠페인단 ‘보라’ 활동을 시작한지 1년이 되었다. 1년 전에는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윤리적 소비를 이제는 마치 연인인양 하루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더 당연해진 윤리적 소비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겐 낯설고 불편하다는 것이 많이 안타까웠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이 ‘새로운 것에 대한 어색함,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는 사실이 아쉬웠다. 캠페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윤리적 소비를 알렸지만 나는 조금 더 눈에 보이는 변화가, 반응이 궁금했다. 당장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전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윤리적 소비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내 친구들에게 윤리적 소비를 알릴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해 보기로 했다.
친구들에게 윤리적 소비를 알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윤리적 소비로 노는 것’이다. 윤리적 소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일상적이고 또 재미있다. 그렇다면 윤리적 소비를 그들의 일상에서 만나게 한다면? 그리고 윤리적 소비와의 만남이 친구와의 만남으로 재미있어진다면? 친구를 만난다. 그리고 평소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대신 내가 보내는 시간을 ‘보라’ 친구들을 만날 때처럼 ‘윤리적’ 시간으로 채우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딱히 준비할 것도 없고, 민망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된다. 친구를 만나서 ‘어디 갈래?’라는 말이 나온다. 이 때 내가 알고 있는 윤리적 소비 매장으로 친구들을 데려간다. 내게는 친구들의 마음에 윤리적 소비를 심어주는 ‘데이트 코스’가 있다. 자주 놀러 가는 홍대 앞의 좋아하는 매장으로 구성된 이 데이트 코스에서 시간을 보낸 친구 중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친구는 없다. 내 영업비밀이기도 한 이 코스를 살짝 공개한다.
홍대 앞 ‘커뮤니티 카페 슬로비’는 내가 친구들과 가장 많이 가는 공간이다. 이곳은 ‘도시에서 천천히 사는 것,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 서로를 살리는 삶을 위한 커뮤니티 만들기’를 추구하는 공간으로 유기농 농산물로 만든 음식과 음료를 맛볼 수 있다. ‘맛있지?’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친구들에게 재배부터 소비까지 윤리적으로 만들어내는 슬로비와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해주면 금상첨화다. 맛있는데 심지어 윤리적이라니!
식사를 하였으니, 자리를 옮길 때다. 하지만 자리를 옮기기 전에 들를 곳이 하나 있다. 슬로비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윤리적 소비에 대한 운을 뗐다면 친구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 친구들에게 윤리적 소비의 신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있다. ‘윤리적 소비가 이렇게 사람의 욕망을 자극해도 괜찮은가?’ 싶은 상품들이 모인 곳이 있다. 바로 ‘리틀파머스’. 환경을 생각하고 환경을 위한 소비를 만드는 친환경 셀렉트샵 리틀파머스에는 다양한 윤리적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연필부터 지갑, 가방까지, 내가 들고 있는 물건들이 부끄러워지는 이 매장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윤리적 소비의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대안적인 문화가 흐르는 홍대에는 공정무역 카페를 비롯하여 윤리적 소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윤리적 소비로 노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갖는다. 친구들에게 윤리적 소비를 알리는 것은 물론이요,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에 좋은 일을 하다니, ‘좋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와 친한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특히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일상적인 행동에서 조금 새로운 이야기를, 윤리적 소비를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꼭 먼저 말하지 않아도 좋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좋다. 윤리적 소비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처음’을 열어주는 것이면 충분하다. 보라 캠페인단이 내가 첫 윤리적 소비를 하도록 만들어 준 것처럼 우리는 친구들이 어느새 첫 윤리적 소비를 하도록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처음만 어렵다.
예전에 ‘도시에서 천천히 산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는 도시에서 천천히 사는 것은 내 생활을, 소비를 되돌아 본다는 것이고, 윤리적 소비만큼 도시에서 천천히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없다. 도시에서 천천히 사는 것, 윤리적 소비자로 산다는 것은 사실 그다지 어렵지 않다. ‘밥 뭐 먹을까? 라는 질문에 ‘나 아는 곳 있어’라고 대답하며 윤리적 식당으로 향하는 것, 그곳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친구에게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도시에서 ‘함께’ 천천히 살아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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