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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2011 공모전 시민심사

[일반부문] (수기) 나는 지속가능한 소비의 노예다 - 김명길



나는 소비의 노예다. 새롭게 쏟아지는 물건들, 그것들의 매력적인 디자인에 매우 약하다. 남들은 전자 기기를 살 때 성능을 가장 중요시하지만, 성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무조건 “예쁜 디자인”을 고른다. 백화점 의류 브랜드 매장에는 매일 같이 새로운 디자인의 상품이 나와 같은 젊은 여자들의 눈과 지갑을 사로잡고 있다. 현대의 소비 시장에서 예쁘지 않다는 건 팔릴 생각이 없다는 얘기와 같을지 모른다. 치밀한 계획 하에 “팔고 말겠다”고 만들어진 예쁜 디자인들에 넘어가지 않을 현대인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람들이 아이폰에 열광하는 이유가 단순히 새로운 기능의 휴대폰이기 때문일까? 애플사의 디자인 철학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전 세계적인 돌풍은 없었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그만큼 매혹적인 디자인의 노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쿨하게 인정한다. 나는 소비의 노예라는 것을.

하지만 새롭고 예쁜 물건들을 보면 단순히 “사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그 물건을 삼으로 인해서 버려질 물건, 즉 나의 소비에 대한 책임은 생각하지 않았다. 먼 미래에 지구가 내가 쓰고 버린 물건들로 인해 쓰레기 더미가 된다면 그때 가서 그 책임을 어떻게 질 수 있을 것인가? 그 책임을 이대로 외면하고 있어도 괜찮을까? 그렇다면 좋다. 살아있는 지금, 나의 소비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다. 소비에 대한 책임 중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바로 “재활용”이다. 실제로 환경을 생각하는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 가게는 오래 전부터 재활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나는 한동안 소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빈티지 의류와 신발, 가방들을 이용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소비의 노예이기에 빈티지 의류를 이용하면서도 새롭게 출시된 상품들의 매혹적인 디자인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재활용 제품들에 대한 소비가 널리 확산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남이 사용하던 제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새롭지 않다는, 촌스럽다는 인식이 더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2009년 직업상 “리사이클링 디자인”에 대해서 접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나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던 “리사이클링 디자인”은 버려진 물건을 단순히 재사용하는 개념에서 나아가, 새롭게 재디자인한다는 것이다. “리사이클링 디자인” 제품은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철학이 담겼지만, 새롭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폐타이어와 폐현수막을 가지고 만든 외국의 한 브랜드는 명품 브랜드 못지않은 디자인으로 고가에 팔리고 있었다.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유명 스포츠 브랜드는 버려진 페트병을 이용해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을 위한 멋진 유니폼을 제작했었다. 지속가능한 친환경적 개발과 디자인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서도 이미 버려진 페트병을 이용한 실제 tv나 휴대폰 같은 제품들의 디자인과 제작을 진행하고 있었다. 매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했던 재활용의 시장에는 이미 소비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과 디자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 덕분에 소비에 책임질 수 있는, 윤리적인 소비자가 되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는 덜 알려진 리사이클링 디자인 제품들 중 내가 가장 주목하는 곳은 아름다운 가게에 소속된 에코파티메아리의 제품들이다. 에코파티메아리의 제품들은  재사용이 어려운 의류들을 소재로 만들어진다. 처음 에코파티메아리에 대해서 알았을 때 제품을 위한 디자인보다 환경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그들의 생각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디자인 시장은 새로운 것을 창출해낸 이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멋지게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브랜드에서 제작한 안전벨트로 만든 필통이나 버려진 가죽으로 만든 가방들은 그것이 버려진 물건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매력적인 디자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단순한 리폼이 아닌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롭고 독창적인 디자인은 “신상”과 다르지 않았다. 버려진 가죽으로 만든 가방에서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못지 않은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다. 나와 같은 디자인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에게 있어, 에코파티메아리와 같은 브랜드는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들에 윤리적인 책임을 질 수 있게 도와주는 기특한 회사다.

 “리사이클링 디자인”을 고민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윤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됐다. 동물의 가죽을 이용한 가방들 대신에 독특하면서도 환경을 생각한 소재의 가방을 이용한다든지, 탄소 배출 최소화를 신경 쓰는 기업을 찾고, 동물 실험을 일체 하지 않고, 천연 재료로 만든 화장품을 사용하게 됐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새로운 상품들의 뒤에는 당연히 어제 생산돼 오늘은 매혹적이 못한 상품들이 남아있다. 그렇게 많았던 어제의 휴대폰과 옷과 가방과 신발, 자동차, 가구 등 그 많던 물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버려지는 물건의 일부는 재활용되고 있다지만, 그건 전 세계 소비 시장을 생각하면 정말 일부일 뿐이고 대부분은 그냥 버려지고 만다. 지금의 속도로 전 세계 60억 인구가 매일 같이 새로운 물건을 소비하고 버리길 반복한다면, 우리는 먼 미래에 영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쓰레기 더미의 지구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건 기우가 아니다. 소비의 노예인 현대인들에게 지구를 생각하는 현명한 소비 리사이클링 디자인의 세계를 강력 추천한다! 앞으로도 나는 소비 욕구를 충족하면서, 지구에 대한 미안함이 없는 지속 가능한 소비를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