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바람과 비를 동반한 “메아리”라는 태풍이 베란다 유리창을 힘차게 때리면서 자신이 태풍이라는 위세를 당당히 표현하며 지나간다. 자연의 섭리는 언제 그랬지 하고 시치미를 뚝 떼고 화창한 아침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화요일이면 아내는 KTX를 타고 송정리역에서 서 대전 생협으로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다닌다. 아침부터 서둘러 아침을 준비 하고 딸아이 학교 갈 채비를 마치고 함께 아침을 먹는다. 아내는 오늘이 인문학 마지막 강의라고 짤막하게 담소를 나눈 뒤 나는 잘 갔다 오라고 말하고 출근했다. 출근해서 한참 업무를 보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리고 아내는 다급한 목소리로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서 기차가 방금 발차했다고 하는 힘 빠진 목소리가 귓가에 흐른다. 어제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해서 조금 일찍 출발하라고 했는데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오늘이 인문학 강의 마지막이라는 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나는 상사에게 집안에 일이 있어 잠깐 집에 간다고 말하고 송정리 역으로 차를 몰았다. 만나자 마자 자잘못을 서로에게 전가하고 원망의 목소리로 서로에게 탓하는 일이 펼쳐지고 말았다. 그럴때면 나는 일을 그렇게 하려면 생협 일을 그만두라고 큰소리로 버럭 화를 낸다. 나는 참 못된 남편인가 보다. 그 어려운 시간을 내면서까지 서 대전으로 공부하러가는 아내에게 해서는 안 될 말로 크나큰 못을 아내 가슴에 박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이 마비된 상태에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고속버스라도 타고 가라고하니 아내는 11시에 강의가 시작하는데 현재 9시20분이 지나고 있다고 하면서 오늘은 강의를 포기해야겠다고 한다. 내 마음이 심한 갈등으로 요동을 친다. 서 대전까지 가느냐, 아니면 마지막 강의를 포기해야 하는지를 한참을 망설이다가 서 대전 생협까지 데려다주기로 하고 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를 미친 존재감으로 빤히 바라보는 아내를 데리고 고속도로를 시속 140km로 달리고 있다. 과연 무엇이 나를 그 먼 서 대전 생협까지 가게 했을까? 윤리적 소비와 사회적 책임! 아내의 시민생협 활동을 통해 조합원들과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동반 성장을 도모하고 성숙한 사회를 모색하는 시민생협 활동이 아내의 삶에서 발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내가 꼭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아내가 행동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서다.
오늘은 빛고을 시민생협 제 2매장이 드디어 짠~하고 오픈하는 그날이다. 아내는 오픈행사에 무슨 옷을 입고 가야하는지 연신 물어보고 이 옷도 꺼내보고 저 옷도 꺼내서 거울 앞에서 들뜬 마음으로 오픈식에 가려고 분주하다. 1매장을 개장 후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2매장을 오픈해서인지 이사들과 스텝들, 그리고 조합원들의 기분 좋은 얼굴이 눈앞에서 그려지고 있다. 오늘은 빛고을 시민 생협의 저력을 보여주는 뜻 깊은 날이 아닌가 생각한다. 1매장과 관련하여 힘들고 어려운 시기도 잘 극복하고 제 2매장을 위해 그 많은 회의와 조합원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설명회도 수차례 열었다. 그리고 2매장에 대한 위치선정을 놓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사들과 스텝들의 토론과 대화는 계속되었다. 여러 조합원들과 사회 구성원들의 유익을 위해서 생협의 필살기를 보이며 순항을 거듭하는 빛고을 시민생협의 참 모습을 보는듯하다. 이래서 아내의 생협 활동이 참 좋다!
남자들도 하기가 쉽지 않는데 한 땀 한 땀의 생협의 정신으로 자신들의 수고와 노력 그리고 희생을 담보로 2매장을 오픈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감동 그 자체로 다가오고 또한 박수를 보낸다.
아내는 무엇 때문에 저리도 안달이 나서 생협 활동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다가 지치면 그만 두겠지라는 생각도, 어쩔때는 언성을 높이며 생협 일들을 그만 좀 두라고 하는 말을 서슴치 않았는데도 아내는 그런 말에 아랑곳도 하지 않고 묵묵히 생협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마음의 상처를 받을만한 말을 들으면 아내는 그만둘성 싶은데 생협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조화인지 도통모르겠다.
아내가 나서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할텐데 하는 마음을 가져 보지만 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오늘도 아내는 생협 기초공부인 입문교육을 담당했으니 가봐야 한다고 홱~하고 문을 닫고 생협 사무실로 가버린다.
아내는 시민 생협에 그 무엇이 있길래 저리도 몸살이 났는지 도무지 오늘도 이해를 못하는 남편을 뒤로 한 채로 생협으로 향한다.
책상위에 인문학 코스 11-12 수료증이 보인다. 시간과 전쟁을 해서 얻은 아내의 값진 승리다. 인문학 강의를 수료한 다음에 아내와의 대화가 한결 부드러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인문학 강의는 꼭 들어볼 가치가 있는 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우리네 삶이 사람 중심으로 가야하는 것은 맞는데 현실은 그 대안을 내 놓지 못한다고 아내에게 푸념하면서 그 대안을 시민 생협에서 룰 브레이커(rule breaker) 내놓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아본다. 소비자 중심의 융합 즉 “하이브리드” 다양성의 추구와 경쟁이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혜택을 준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해답은 소비자에게 달려있다고...
마지막으로 생협에서 활동하는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삶은 인생의 전부입니다. 그러니 매순간 살아야 합니다.
삶은 과거처럼 이미 결정된 것도 아니고, 미래처럼 머릿속에 정물화 된 완벽도 아닙니다.
삶은 지금이며, 생명의 출렁임이며, 거친 호흡이며, 구름처럼 불완전한 끊임없는 변이입니다.
그래서 흥미롭습니다. 생협 활동을 지켜보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켜보면서 당신들을 생각합니다. 사랑 합니다~ 시민생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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