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봉사자의 천국 - 박세아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제 3세계 아이들에게 정당한 값으로 돌아가는 착한 초콜릿, 알차고 의미 있는 여행을 통해 현지인들에게 올바른 방식으로 이익을 가져다주는 공정여행 등 최근 우리 사회의 소비 형태는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원하던 합리적 소비 형태에서 생산기업의 사회적 인식이나 제품이 지닌 공정성, 즉 ‘상품의 의의’를 따지고 구매하려는 윤리적 소비로 전환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러한 소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산 작업장을 얼마 전 직접 체험하고 돌아왔다.
런던에서 5시간 반 정도 떨어진 Wales의 작은 시골 마을 Llandovery.
지역 주민들과 문화행사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봉사자들
이곳엔 18세에서 25세 까지 신체 및 정신 지체를 지닌 청년 장애우들이 살고 있는 ‘Coleg Elidyr’ 란 이름의 캠프힐 커뮤니티가 있다. 캠프힐 커뮤니티란 1940년 영국에서 처음 세워진 장애우 공동체로 장애우와 비 장애우가 함께 살아가면서 다양한 특수 교육을 통해 이 들의 행동발달과 사회적 자립을 도와주는 시설이다. 현재 영국을 비롯한 독일,미국,캐나다,남아프리카 공화국,아일랜드 등 19개국 90개 이상의 공동체가 있다.
나는 영국 어학연수를 준비하던 중 이 곳을 알게 되었고 20대인 나 스스로에게 좀 더 색다른 경험을 선사 해주자는 생각으로 장기자원봉사를 지원을 하게 되었다. Coleg Elidyr는 모두 7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중간 규모의 커뮤니티다. 규모에 따라서 한 집에는 약 6명의 장애학생들과 6~7명의 봉사자들이 거주하고 어시스턴트 매니저나 서포터 워커와 같은 출퇴근 스탭, 그리고 하우스매니저가 함께 일을 하는데 이 모든 사람들은 매우 수평적 관계에 놓여있다.
장애학생부터 시작해서 나와 같은 외국인 근로 봉사자에 대한 인권과 행복추구가 철저하게 보장된 그야말로 행복한 일터이자 배움터인 것이다. 그래서 캠프힐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지상낙원’이라고 표현하며 선진국 형 장애우 시설과 그 운영에 매우 놀라워하고 있다.
각 커뮤니티마다 약간의 환경은 다르겠지만 이곳은 감자밭, 목장, 수공업장, 식료품 가게 등을 갖고 있고 그 밖에 베이커리와 Pub (영국식 호프집)을 시내에서 경영하고 있다. 때문에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식료품들은 커뮤니티 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유기농 채소를 기르는 일과 방목된 목장에서 건강하게 사육된 가축을 키우는 일은 모두 학생들 수업 중 일 부분이다. 이들은 수확의 기쁨이나 식물의 생장과정을 자연 속에서 직접 느껴갈 뿐 아니라 이러한 수업은 장애 발달 개선에도 매우 좋은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각종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는 소규모 비닐 하우스
그 밖에 필요한 생필품들은 지역사회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대형마트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공동체에 들어오곤 했는데 설령 시중 가와 똑같은 가격으로 사게 되더라도 메인오피스에 영수증을 첨부하면 그만 큼 할인된 가격을 받았다. 마트는 물론이고, 우체국, 영화관, 각종 문화시설 등 장애학생을 포함한 봉사자들 까지도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장애우 시설이 이렇게 지역사회로부터 특혜를 받게 되다보니 공동체는 공동체 나름대로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국가나 지역단체에서 받은 경제적, 사회적 보장은 반드시 다시 지역사회를 위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 내에서 생산된 상품 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열리는 각종 음악 공연과 연극 등 문화적인 행사 그리고 다양한 바자회가 그것이었다. 그렇게 얻는 수익금은 공동체 운영에 쓰이고 우리는 질 좋고 건강한, 믿을 수 있는 상품을 또 다시 사회로 환원한다. 지역사회와 장애우 시설, 그리고 지역주민의 열린 의식이 모두 모여 그야말로 착한 소비를 나타내는 ’선 순환 구조’ 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장애우 학생과 다운증후군 친구들에게는 사회성과 협동심, 자립능력을 키워 주고 나아가서 사회생활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영국의 캠프힐은 학생들이 단순히 장애우로서, 사회로부터 격리 또는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닌, 모의 삶의 현장에서 사회생활의 기술을 터득하며 경제관념을 익히고 공동체를 떠난 후에도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도움을 받는 곳이다. 특히 상점과 시내에 위치한 베이커리 그리고 pub에서는 사회로 나가기 바로 이전 단계에 있는 친구들이 일을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우리가 직접 구운 빵이나 수제 쨈을 사기도 하고 펍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사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들을 같은 동네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이라고 생각하지 장애를 흠잡거나 이들의 서툰 솜씨에 불평을 토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식품첨가물이 넘쳐나는 요즘, 오히려 우리가 손수 키운 친 환경 채소와 천연 발효 빵을 시중상품들과 비교하며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여겼다.
양을 비롯한 각종 가축 사육장
물론, 수업시간의 일환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상점들은 한 번에 많은 양의 상품을 내 놓기는 힘들고 수익률이 그다지 높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장애의 정도에 맞게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나의 가장 멋진 상품을 완성해 가고 있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은 그 안에 담긴 소중한 땀방울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캠프힐 상점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윤추구가 아니다. 상품의 가치가 우선시 되지도 않는다. 장애를 내세워 연민과 동정으로 거래를 하는 것 또한 결코 아니다. 장애우가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한 조건에서 빚어 낸 빵 한 조각과 치즈, 작지만 단단한 감자와 양배추에 정당한 가격을 달아 판매하는 것이 그들에겐 사회적 자립을 조금씩 실천하는 의미 있는 과정인 것이다.
바로 그 과정 안에 정답이 있었다. 장애우와 함께 일을 하는 자원봉사자와 여러 스탭들은 그들의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역사회로부터 정기적인 교육, 위생, 장애치유 관련 세미나 등을 철저하게 받고 있다. 비 장애우의 인격보다 장애우의 인성과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 더 존경받고 보호되는 이 작은 지상낙원에는 장애우 고용의 불합리나 장애우 노동 착취라는 말은 존재 할 수가 없다. 장애우와 비 장애우가 함께 일하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터가 다름 아닌 이 곳이었다. 때문에 이들은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생산자로서 맡은바 책임을 다하며 지역사회로부터 자연스럽게 윤리적 소비를 소리 없이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16,17일 나는 MBC뉴스에서 우리나라의 장애인 보험차별과 인권실태에 대해 집중취재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정신 장애가 암보험 가입불가 요인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장애를 가진 부모의 자녀마저 보험가입이 어려운 현실,.. 자유도 개인의 인권도 존재하지 않는 시설보다는 탁 트인 곳에서 노숙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는 한국의 젊은 장애우들... 내가 영국에서 보낸 캠프힐 생활이 기적처럼 느껴진 이유는 어쩌면 우리나라 장애우들 의 인권과 사회적 대우의 실태가 자꾸만 겹쳐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쪽으로 11시간 떨어진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그러한 현실이 마치 역사처럼 진행되어가고 있지만 나는 현재 ‘신 유토피아’인 이 곳 에서 매일매일 색다르고 놀라운 장애우의 인권을 만났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과 이상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겪었던 지난 경험을 통해 진정한 윤리적 소비를 배우고 느꼈으며 착한 소비가 활성화되려면 국가의 적극적인 보장체제와 지역사회와의 지속가능한 연계시장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시민들의 의식전환 이 세 박자가 모두 어우러져야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윤리적 소비는 엄밀히 말해 ‘소비’가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매우 의미 있는 ‘생산’ 인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착한 소비의 씨앗이 훌륭한 경제성장의 원천이 될 그 날을 기대하며 한국의 장애우 인권과 노동 권리가 선진국 못지않게 개선될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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