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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2011 공모전 시민심사

[일반부문] (수기) 오리의 해피엔딩 - 김민지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 중에 <미운오리새끼>가 있다. 튀는 외모를 갖고 태어나 외롭게 살아가는 어느 ‘오리’ 이야기. 당시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나로서는 별다른 감흥 없이 책을 덮어버렸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 스무 살이 된 지금, 유독 그 이야기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다르고 싶어 다른 것도 아닌데 그 친구,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했을까. 부모는 더했을 거다. 제가 낳은 게 틀림없는데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닮은 구석 하나 없이 낯설기만 하니 휘둥그레, 했겠지.

요새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이 그렇다. 장바구니 속 우유를 슬그머니 유기농 마크 달린 걸로 바꿔 담는 나를 보고 휘둥그레. 마트에서 싸게 팔길래 사오셨다는 복숭아를 끝끝내 입에 대지 않는 나를 보고 휘둥그레. 공휴일이면 으레 함께 끓여먹던 라면상 한구석에서 꿋꿋이 밥을 차려 먹는 나를 보고 또다시 휘둥그레. 처음에는 ‘얘가 대체 왜 이러나’ 하시더니, 이제는 ‘뭐 이리 유난이야’ 하신다.

그럴 밖에. 전형적인 대한민국 주부, 우리 엄마의 신념은 ‘싼 게 최고’, ‘주는 대로 먹는 게 최고’다. 아버지는 ‘음식치고 몸에 나쁜 것 하나 없다. 뭐든 몸속에 들어가면 제 할 일 한다’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지어다, 음식절대찬양론자. 그런 두 분의 결실답게 동생은 ‘어쨌거나 맛난 게 최고’. 그 틈에 내가 있다. 가격표보다, 맛깔스런 포장지 사진보다, 구석에 깨알같이 나열돼있는 글씨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내가. 그야말로 영락없는 현대판 미운오리새끼다.

물론, 날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나의 외롭고도 험난한 여정은, 3년 전 대안교육권으로 편입하면서 시작됐다. 대안적인 화두, 대안적인 사람들, 대안적인 공부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전에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비로소 눈을 뜨게 됐다.

세계화와 공정무역을 공부하기도 했다. 교통과 기술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의 커다란 마을이 되었다는 '지구촌'. 언어도 피부색도 다른 이들이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정다운 그림이 그려진다. 하지만 알고 보니 실상은 처절하고 비극적이었다. 빈부는 더욱 더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고, 개발도상국은 불어나는 부채의 늪으로 잠식해간다. 굶주리는 나라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하루하루 기부에 의지해 내일을 이어간다. 그 모든 일들은 총칼 아닌, 바로 자본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절망적인 현실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희망을 찾는 움직임 역시, 자본을 통해서다. '공정무역', '착한 소비'등으로 불리는 뜨거운 희망과 도전이 이미 세계 곳곳에서 물꼬를 텄다.

하루에도 수없이 만지고 꺼내는, 돈. 대형마트에 들러 별다른 고민 없이 음료 하나를 집어 드는,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위들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회적이라 여겼던 소비가, 모이고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선거날 투표장에 가는 것만이 정치가 아니었다. 삶속에 녹아있는 제 몫의 선택과 힘을 분명히 인식하고 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참여다.

공부를 마쳐갈 즈음, 나의 태도는 확연히 변해있었다. 단순히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해왔던 수동적인 모습에서, 이제는 소비를 통해 정치적인 의견을 지지하는 후원자로 또는 반대하는 운동가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됐다.

그러는 중 자연스레 생활협동조합이라는 걸 알게 됐다. 꽤 많은 단체들이 이미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찌나 반갑던지 바로 이런 걸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다고 하는 구나 싶었다. 하지만 고작 수저 얹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미 ‘비정상적으로 값싼’ 가격에 익숙해져있는 가족들은 굳이 멀리서, 더 비싸게 사오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 역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학생이라 수중에 돈이 얼마 없기도 할뿐더러 나 혼자 집안 살림을 바꾸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그리하여, 보류 중이다. 하지만 가족들과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온전히 나에게만 주어진 부분들에 있어서는 달라진 소비를 꾸준히 실천 중이다. 특히 생협 베이커리, 자연드림의 충성고객이 되었다. 밖에서 끼니를 해결해야할 때면 꼭 자연드림에 들른다. 아직은 이만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기고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느리게나마, 차츰 번져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궁리해볼 작정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있었던 엄마의 생신날은 더더욱 뜻 깊었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 데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부터 가족들에게, 케익은 꼭꼭 내게 맡기라고 몇 번이고 당부해놓았다. 마침내 찾아온 기념일, 나는 두근거리는 맘으로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모두들 일제히 시선이 케익으로 향했다. 대체 무슨 케익이길래 서울에서까지 사왔니, 빨리 먹어보기나 하자며 엄마가 웃어보였다.

평범한 상자에 담긴, 딱히 놀라울 것 없는 평범한 딸기무스케익. 실은 나 역시 궁금했다.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와있는 시식 후기만 믿고 사온 터라, 어서 맛보고 싶었다. 촛불을 켜고 축하노래를 부르고 마침내 한입 두입,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특히 동생이 한 말이 충격적이었다. “이거 먹으니까, 전에 먹었던 케익들이 플라스틱처럼 느껴져.”

몸으로 나타나는 즉각적인 반응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윤리적 소비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무엇이 공정한지, 얼마나 안전한 재료인지, 애써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윤리적인 상품은 그 자체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그 안에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가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는 것보다, 케익 하나가 소리도 없이 많은 것들을 말해주었다.

이제 곧 다가올 아버지 생신에 맘이 콩콩 설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