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선생님! 늦었지만 설날 선물이예요. 제가 용돈 모아서 산거니까 꼭 선생님 혼자만 드셔야 해요.”
선생님께 처음으로 선물을 주는 것은 우리 복지관 최고의 말썽쟁이 덕호에게도 어색한 일인지 아이의 낯빛이 붉으스레 하다. 선생님을 생각해 주는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했지만 겉으로는 용돈 모아서 책이라도 사보지 뭐 하러 이런걸 샀니 하며 크게 야단하였다.
친구들은 몇 개에 학원에 다니느라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야 할 시간에도 일용직으로 일하시느라 더 늦으시는 한 부모. 혹은 조부모를 기다리며 복지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바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인데 선물 하나에 어찌 기쁠 수만 있을까. 덕호는 개중에도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베트남인 엄마와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를 리 없으니 덕호의 선물은 내게 목에 걸린 가시처럼 오히려 아프고 쓰린 것이다 .
“알았어요. 앞으로는 선물 안 사올게요. 용돈 모아서 책도 사 볼게요. 그러니 어서 드셔 보세요.”
덕호의 성화에 포장된 상자를 풀어보니 앙증맞은 초콜릿들이 가지런히도 놓여 있었다. 은박종이에 쌓여진 초콜릿 하나를 내 입에 가져가기도 전에 덕호는 신이 난 모양이었다.
“맛있죠? 선생님! 엄청 맛있는 거랬어요. 공정무역 초콜릿이라서 선생님이 더 좋아하실 것 같아서 고른 거예요.”
달달한 초콜릿의 맛을 느끼기도 전에 공정무역 상품이라는 덕호의 말에 놀라움이 앞서왔다. 공정무역 상품? 대게 제 3국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급하자는 운동 정도로 언젠가 어디에선가 나도 들은 적은 있었다. 허나 어른인 나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공정무역이란 단어를 덕호가 어찌 알까 싶어 나는 덕호에게 되물었다.
“덕호야! 덕호는 공정무역 상품이 뭔지 아니?”
한참을 골몰히 생각하더니 덕호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
“음! 공정무역 상품은요. 누군가의 꿈과 희망을 응원해 주는 물건 이예요. 엄마 나라에 가면 또 어느 먼 나라에 가면 저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도 어렵고 힘든 일을 많이 한데요. 그 아이들의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게 우리가 그 아이들의 물건을 정직한 값에 사는 게 공정무역이랬어요.”
어디에서 들은 것인지, 또 덕호가 스스로 생각한 것인지 너무나 기특하였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나는 끝내 물어 볼 수 없었다.
공정무역. 공정한 소비. 환경을 보전하는 친환경 소비,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소비…….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만으로 윤리적 소비에 대하여 우리가 그저 입고 쓰고 먹는 것만으로도 지켜 갈 수 있는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쉽게 알 수 있었고 선생님으로 엄마로 또 주부로 내가 과연 올바른 소비를 해 온 것인지에 대하여 되 뇌이고,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때론 아니 자주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던 날이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국가의 녹을 먹는 사회복지사이기 이전에 그저 어른이란 이름이 막연히 부끄러워지는 날이 많았었다. 어른의 사리사욕을 위해 방치 되고 학대당하는 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제 잘못이 없다 해도 어른인 나도 당당하고 떳떳할 수만은 없었다.
지금도 어느 먼 나라 혹은 가까운 어느 곳에서 아이들은 어른의 욕심에 의해 삶의 고단함이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낸 피 같은 노동력을 갈취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힘 있는 자의 횡포와 가진 자의 욕망의 노예로 팽개 쳐진 나약한 노동자들은 정당한 댓가조차도 구걸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환경을 살리고, 자연을 아끼는 소비도 물론 윤리적 소비의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단어인 인간의 존엄성을 최소한 보장해 주는 공정한 소비가 가장 우선 되어야 할 윤리적 소비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채 자라지도 못한 새싹과도 같이 여리고 보드란 아이들이라면 국적과 피부색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선택하여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마땅히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하고 널리 알려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공정무역 상품 구매는 불우이웃을 돕는 일이 아니었다.
피와 땀이 엉키고 서려 내려 더욱 품질 좋고 맛깔스런 제품들을 합당하고 정당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기에 소비자들에게도 득이 되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소비이다. 소비하면 할수록 행복해 지는 이상하게 기분 좋은 소비이기도 하다.
공부를 썩 잘하진 않지만 아직도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개구쟁이 덕호지만 덕호의 꿈은 대통령이다. 자신처럼 소외당하고 갈 곳 없는 친구들을 위해 더욱 큰 복지관을 짓고, 복지관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무슨 병이든 고쳐 내는 척척박사 병원을 만들고, 베트남인 엄마가 쫓겨나지 않고 오래토록 일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 덕호의 희망이다.
자신도 불우할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는 초등학교 4학년 덕호가 다른 나라의 머나먼 세계 아이들의 멋진 꿈을 응원하며 내게 선물한 공정무역 초콜릿은 맛만큼이나 마음에 달콤함을 주는 소중한 선물이 되어 주었다. 마흔의 부족한 선생님은 어린 덕호를 통해 윤리적 소비란 것을 몸소 익히고 느낄 수 있었고 이제는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는 조금은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되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윤리적 소비를 공정무역 제품을 알고 처음 맞이하는 이번 추석엔 커피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차와 초콜릿, 또 와인과 아이들의 학용품등을 지인들에게 선물 할 수 있는 즐거움도 맛보게 되었다. 사랑하고 감사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작은 카드를 써 내려갔고 마지막엔 하나 하나 더 없이 행복 할 메모를 남겨 드렸다.
‘대통령의 초콜릿’ ‘의사의 커피’ ‘기업가의 와인’ ‘톱가수의 노트’....
대통령의 꿈을 가진 아이가 만든 초콜릿이 의사란 희망을 안고 사는 아이가 생산한 커피를 구입함으로써 우리는 그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함께 응원해 주는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소비자가 되었음을 잊지 말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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