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이집의 윤리적인 소비’를 주제로 글을 쓰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어린이집의 윤리적인 소비? 그게 뭐야?”하기에 “윤리적인 소비는 환경이나 생산자나 쓰는 사람에게 해롭지 않도록 양심적으로 물건을 사는 거야. 예를 들면 환경이나 몸에 좋도록 친환경 농법으로 지은 농산물을 사거나, 가난한 나라에서 커피 같은 거 살 때 착취하지 않고 합당한 가격으로 사는 공정무역 제품을 이용하는 일 같은 거 말야.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사용할 물건을 사니까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이로운 물품을 양심적으로 구입하는 게 어린이집의 윤리적인 소비겠지?” 남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 어린이집에서 돈 좀 아끼겠다고 싸구려 재료로 저급한 질과 양의 음식을 주고, 유해한 물질로 주변을 채우는 소비는 윤리적인 소비가 아니다. 운영 여건이 안 좋아도 화학첨가물 피하고, 자연재료를 쓰고, 유통기한 지키고, 시중의 과자, 음료, 사탕을 들이지 않고, 친환경 재료를 병행하거나 직접 키워 쓰는 것 등 생각만 가지면 얼마든지 실천가능한 방법이 있다.
어린이집이 윤리적인 소비처로 너무나 중요한 이유는 그 이용자가 갓난아기부터 일곱 살까지 아이라는데 있다. 그들이 짧게는 몇 시간부터 길게는 24시간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머무fms다. 급격히 성장하고 면역이 약하기 때문에 들어간 음식물이 그대로 몸을 만들고 아토피나 여러 질병을 만들거나 낫게도 한다. 식습관이 형성되고 환경과 음식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도 만들어진다.
10년 전 내 아이를 안심하고 보낼 곳을 찾다가‘자연학교’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터전을 만들었다. 자연환경교육을 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매일 자연에 나가 신나게 놀고, 생협을 통해 좋은 음식 먹이고 좋은 책을 읽어줬다. 아이들은 금방금방 달라졌다. 밝아지고, 건강해졌다. 엄마들이 “병원비가 줄었어요!”, “아토피가 나아서 밤에 잘 수 있게 되었어요”했다.
엄마모임에서 바른 먹거리 등에 대해 공부도 하고 회의도 했다. 매주 나가는 나들이의 도시락을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쌌는데, ‘친환경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집은 어떻게 하느냐’,‘아토피 때문에 내 아이는 따로 싸야 하지 않나’ 하는 질문들이 나와서 말씀드렸다.
“여기는 가정이 아니라 돈이 오가는 기관입니다. 그런 기관에서 저도 제 자식이 아닌 아이들을 위해 친환경재료를 쓰는데, 하물며 엄마들이 자기 아이를 위해 쓰는 재료를 그보다 못하게 쓰신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하면서 모두 친환경 재료를 쓰도록 했다. 그렇게 친환경 식재료를 접하게 되면서 가정에서 생협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주변에 전파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종종 어린이집 급식문제가 이슈가 되는데 국가의 감사는 서류 중심이고, 원장의 자긍심에 해를 주고, 지속적이지 않은 문제가 있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오히려 부모들의 행동에 대한 주의사항이 공유되고 정부의 보상이 있는 가운데 어린이집이 학부모에게 문을 열어 직접 보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방법으로 생각된다.
학부모와 단체도 어린이집의 윤리적 소비를 위해 역할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곤 했다.
예를 들면 시흥시는 어린이집에 아이당 매일 우유 한 팩씩을 지원하고 있다. 우유자체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영유아들이 우유 한 팩을 먹은 후엔 식사량이 확 줄게 된다. 부모들이 시에 우유의 문제나 아토피 있는 아이들이 먹지 못하는 형평성의 문제, 식사량의 문제를 지적하며 대안으로 친환경 식재료를 살 수 있도록 생협 등으로 식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면 좋을 것이다.
학부모들이 어린이집 입학상담시 “친환경 식재료를 쓰시나요?”하고 묻는 것도 어린이집의 윤리적 소비로의 전환에 도움이 될 것이다.
10여 년 전에는 생협과 일반가게의 물품가격 차이가 많이 났지만 요즘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친환경재료에 대한 인지도도 많이 올라갔다.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강점으로 원아모집에 성공하는 원도 있다. 나는 생협에서 편리하게 주문하고 배달을 받으며 시간을 절약한다. 이런 상황과 장점을 이용해 생협 등 친환경업체에서 어린이집들에게 홍보하면 어린이집으로 친환경 재료가 진출하는데 효과적일 것 같다.
생협에서 어린이집 학부모를 대상으로 어린이집에 대해 알게 하는 교육을 여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의료생협처럼 어린이생협을 만들면 어떨까?)
나는 매년 올해까지만 하자 하며 10년을 이 자리에서 버텨왔다. 나를 쓸모없게 느끼게 하는 서류 업무, 정성을 밟고 물어뜯는 부모들, 재정적인 어려움, 정부의 제약... 그러나 어제도 뜰로 나가 우리 하양이가 난 강아지를 보며 환희에 찬 아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었다. 내가 내년 혹은 내일 이 일을 못하게 될지라도 이 일을 하는 동안은 이 존귀한 아이들을 맡은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신의 가치를 찾아 발휘하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윤리적인 소비는 기본이다.
내 주방에는 학부모가 준 카드가 붙어있다.“이곳에 보내면서 먹을거리 걱정하지 않고... 항상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하는. 얼마나 뿌듯해지는지! 나는 10년간의 신뢰와 감사로 엮인 관계의 부자다!
자연학교 앞을 지나가던 졸업생 아이가 친구들에게 “나 여기 나왔다, 얼마나 재미있었는데!”했다. 건강하고 밝은 제자가 하는 이런 말을 듣는 행복! 양심에 따른 행동의 보상!
어린이집 일은 정말 힘들다. 어린이들의 터전을 운영하며 수고하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복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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