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윤리적 소비 - 박준영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이번 여름, 뉴욕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여러분은 뉴욕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UN 본부?
물론 뉴욕엔 하루를 꼬박 걸어도 다 보지 못할 만큼 명물이 많지만, 최소한 대학생에게 있어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모교, 컬럼비아 대학교는 그 어떤 명소와 견주어도 무게감이 떨어지지 않는 장소임이 분명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오붓한 직사각형의 캠퍼스 안에 옹기종기 들어차 있는 컬럼비아 대학 건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을 뽐내면서도, 전체적인 일관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컬럼비아 대학을 상징하는 푸른 하늘빛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고, 하늘빛 휘장의 물결은 맑고 화창한 진짜 하늘과 어우러져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켠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듯 했다.
그렇게 여유롭게 캠퍼스를 거닐던 찰나, 대학생의 미적 감각이 묻어난다기엔 조금은 유치한 색감을 가진, 삐뚤 빼뚤 글자가 쓰여진 작은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FOOD SUSTAINABILITY PROJECT. 조금 의역을 하자면 지속가능한 식품 프로젝트 정도가 된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놓여진 조그마한 화분들. 아직 묘종 티를 못 벗었거나, 이제 갓 싹이 튼 식물들이 화분마다 빼곡히 심겨져 있었다.이 현판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느낌이 왔다.
아 이거, 그런 거였구나!
평소 로컬 푸드나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 유통에 관심이 있었고, 실제로 몇몇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서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컬럼비아 대학 친구들이 뭔가 확실히 한 건 하고 있겠구나 라는 확신이 생겼다. 똘똘한 아이비리그 친구들은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번쯤 확인해 보고 싶었다.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엄밀히 말해서 ‘친구’들은 아니었다. 굳이 학생들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자원봉사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가족 단위 참여도 활발하다고 한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함께 작물을 가꾸고, 이를 학내 식당에 납품하여 직접 가공/판매하거나 Greenmarket이라는 농산물 시장에서 자신들이 재배한 작물을 직접 판매한다. Greenmarket 자체는 이들이 주관하는 행사는 아니다. 뉴욕 시의 지원 하에, 컬럼비아 대와 Barnard College의 후원으로 열리는 공식적인 농산물 시장이다.짧은 영어실력과 빡빡한 일정 탓에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이들의 웹사이트를 좀 더 뒤적거려 본 결과 이들은 세 가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첫째, 환경.
평균적으로, 농산물이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는 1300에서 1500 마일, 그러니까 최대 2400 킬로미터 정도를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미국의 경우다) 로컬 푸드를 이용하면, 농산물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발생을 억제하는 동시에 연료 소비를 줄일 수 있다.
둘째, 경제.
일반적으로 우리가 음식에 지출하는 1달러 중 9센트, 그러니까 1000원 중 90원만이 생산자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나머지 91%는 유통 과정에서 마진으로 소모되어 버리는 것이다. 중간 유통 절차를 간소화함으로써, 1달러 중 최대 80센트가 생산자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셋째, 삶.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의 95%는 몇몇 다국적 기업농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소농의 급격한 위축을 불러왔는데, 1930년대 700만 가구에 이르던 소농은 오늘날 겨우 200만 가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 중 순수 농업 수익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가구는 1/4 수준에 불과하다고 하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이왕 관심을 보인 김에, 그들이 권하는 대로 이들이 재배한 작물로 만들었다는 요리를 한 번 먹어보았다. 투박하리만치 엉성하게 잘려 널부러져 있는 피망 조각이, 척 보기에도 본인의 취향과 잘 어울리지는 않는 음식이었지만, 많은 이의 정성이 들어간 ‘윤리적’ 식품이어서 그랬던지 막상 입에 넣자 그런대로 먹을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들의 노력, 그리고 성과는 다른 누군가에 비해 두드러지거나, 눈에 띄게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최소한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본인은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과, 조금이라도 변하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 큰 변화는 작은 변화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러하듯이, 이들은 자신들 스스로로부터, 그리고 지역사회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었고, 마침내는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이들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세계의 끝에서 맞닿을 때, 비로소 더 나은 세상이 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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