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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사례

나의 윤리적 소비는 채식으로부터

나의 윤리적 소비는 채식으로부터 - 박진영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나는 원래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채식주의자’라고 불렀지만,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문제의식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편식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닭고기를 엄청 좋아했고 오리고기도 가끔 먹었으며, 해물과 유제품도 즐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채식주의자로 알고 있었던 걸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채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모양이다. 나는 한번도 내 입으로 채식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채식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남들보다 채식을 실천하기 쉬웠음은 물론이다.) 다큐멘터리, 인터넷 자료 등을 통해 채식이 환경과 내 삶에 가져올 변화, 육식의 문제점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채식을 하지 못한 건 일상이 너무 불편해지기 때문이었다. 해물과 유제품을 포함하여 절대 육식하지 않는 완벽한 채식주의 체험에 일주일간 도전한 적이 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실패했다. 자판기에서 우유가 들어간 캔커피를 뽑아 마셨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쿠키에도 우유와 계란이 들어가 있었고, 된장찌개에는 멸치가, 김치에는 젓갈이 들어 있었다. 그런 음식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는 걸 모른 건 아니지만, 이전에는 육식이 그렇게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걸 체감하지 못했다. 비록 실패한 도전이지만 값진 경험이었음엔 틀림없다. 애초에 체험에 의의를 둔 도전이었다.

학창시절 존경하는 철학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 완전식품으로 알려져 있는 우유가 오히려 건강에 나쁠 수도 있다는 사실도 교수님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형 축산에서는 동물들이 햇빛을 보지도 못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도 없는 잔인한 환경에서 자라며, 공장은 동물들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동물 먹이에 항생제를 퍼붓는다고 한다. 우리는 우유와 치즈, 고기를 제공하는 소가 한가롭게 푸른 초원에 노니는 상상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공장형 축산에 관한 플래시 애니메이션 <미트릭스>를 추천한다.)

유엔 FAO의 보고서 <가축의 어두운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에 따르면, 기후변화의 최대 원인은 축산업이라고 한다. 목축장 폐기물에서 배출되는 오수는 전 인류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오수의 양보다 많으며,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절반 가량이 가축의 사료로 쓰이고 있다. 1년에 5,800만 톤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매년 동물들에게 7,700만 톤의 식량을 먹여야 하는데 이렇게 낭비되는 1,900만 톤의 식량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먹일 수 있고 수많은 동물들의 목숨도 구할 수 있다.

한편 네팔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축제 때 소를 잡는 모습을 보았는데, 자신들을 위해 먹이로 바쳐지는 소의 죽음에 굉장히 미안해하고 감사하는 네팔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사람의 먹이로 소비되는 죽음이지만, 어떤 소가 더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았을지는 굳이 비교해보지 않아도 답이 나온다. 어떤 먹이가 인간에게 더 이로운가를 따져봐도 마찬가지이다. 비싸도 유기농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런 것들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채식주의자 체험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지 2년 만에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알면서도 모른 척해왔는데, 양심에 찔리는 건 둘째치고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 거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만큼 채식이 어렵지 않다. 도전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이유가 생겨서일 거다.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할까.

그리고 채식이 내게 준 또 하나의 큰 의미는 윤리적 소비의 첫걸음이 되었다는 거다. 채식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에게 관심과 사랑을 갖게 되어, 최고급 가죽제품이 잔인하고 혐오스럽게 느껴져 인조가죽이나 천연소재를 찾게 된다. 또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농가로 이어지고, 환경에 대한 관심은 우리집의 세제들을 몽땅 친환경으로 바꿔놓았다.

또 채식을 통해 지구 곳곳을 돌아보면서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아프리카 아동을 후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 버마의 독재정권을 살찌우고 자연을 해치고 강제노동이 만연한 천연가스 개발사업에 한국이 앞장서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버마의 독립운동가를 후원하게 되었다. 최근 친환경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많은 기업들이 친환경적 마인드를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는 기업 윤리와 마케팅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비싸더라도 기꺼이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겠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기업은 친환경 마케팅을 통해 기업 이미지도 살리고 이윤도 챙기지만, 진정한 윤리의식 없이 마케팅에 친환경을 이용하는 기업들 역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 세계적 의류 브랜드인 리바이스에서는 100퍼센트 유기농 면으로 제작된 에코진을 출시하면서, 수익금의 일부로 ‘어린이 환경교실’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 시사전문지 <선데이 타임스>에 따르면, 아프리카 빈민국가 레소토의 수도인 마세루는 외곽지역에 리바이스와 갭 공장이 들어선 이후, 극심한 오염으로 인해 저주받은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청바지 염색에 쓰이는 화학약품으로 인해 강물이 청바지 빛으로 변한 지 오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물실험을 하는 화장품 회사들조차 친환경이란 단어를 앞세우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는 많은 제품과 마케팅 속에서 진짜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개인적 신념에 반하는 소비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불편해도 더욱 까다로워질 일이다. 채식을 하는 것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전 인구의 70퍼센트가 채식을 해야 된다. 그러나 불편을 감수하는 나 하나의 실천으로는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고 모른척하면 그만일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채식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각자의 마음속에 소비에 관한 신념을 가졌으면 한다. 꼭 채식이 아니더라도. 변화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친환경이라는 트렌드가 유행으로 스쳐갈 것이 아니라, 의식에 변화를 불러오는 바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채식이 나의 소비에 많은 변화를 불러온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왜 당연한 것을 위해 불편함을 느끼며 살아가야 될까? 건강한 먹을거리만 존재하고, 굳이 따져보고 찾아나서지 않아도 친환경적인 제품만 존재하는, 채식주의자들을 배려하는 사회가 될 수는 없을까? 나도 모르게 자연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않고서도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소비가 당연하고, 비윤리적인 기업들은 왕따가 되는 세상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