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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공모전 안내/과거 공모전 수상작

10' 수기부문 동상 / 바깥 세상은 그들을 장애인이라 부른다 <카페 하랑>


2010년 동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바깥 세상은 그들을 장애인이라 부른다 <카페 하랑>
(
홍주선, 부이미디어 대표)




Prologue

어느 날, 높은 빌딩, 잘난 사람들, 비싼 물건들 앞에 나 자신이 작아보였다. 내가 뒤처지지 않을까, 남들보다 조금 못한 걸 가지고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어지러웠다. 그래서 나는 큰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늘어선 긴 줄에서 빠져나가, 햇살이 새어 들어오는 작은 틈으로 나가, 희미한 빛을 따라 달려가 보기로 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카페하랑'이라는 동네 커피숍이었다.









 

외따른 가격, 단발 머리 종업원

찬 바람이 부는 길가에 한 턱 높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귤빛 등이 새어나왔다. 철판을 덧대어 만든 간이 공간이지만 갈색 외벽과 딸랑거리는 종소리는 단단한 아늑함을 품고 있었다. 연한 빛 내벽과 너댓 자리의 목재 테이블에서는 오래지 않은 나무 내음이 묻어났다. 커피 한 잔이면 밥값을 수월히 넘어서는 세상이지만, 하랑의 가격표는 외따로 천오백 원. 많은 사람들과는 설핏 다른 얼굴을 한 단발머리 종업원이 주문을 받았다.


우리는 그들을 '장애인'이라 부른다

지적 자폐성 장애인, 바깥에서는 그들을 그렇게 부른다. 학교 수업시간 구석 자리에 앉아 아이들이 짝꿍을 하기 싫어했던 한 친구의 또 다른 이름. '너 다운증후군 환자 같아'라며 외모나 성격을 비하할 때 모욕적인 비유로 언급하는 단어. 좀 더 머리가 큰 짓궂은 청소년들이 파란 잠바의 지적 장애인을 환한 대낮, 길가 구석에 몰아붙이며 위협하던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목소리 키워 싸우지 않으면 금세 밀쳐내고 가진 것도 빼앗아가는 세상, 그들처럼 태어난다는 건 무서웠다.


하랑에서, 천천히 배울 수 있다면

서울 개포동에 위치한 카페 하랑은 조금씩 조금씩 밀리다 임금을 떼이기 일쑤, 느리고 눈치 없다고 일자리조차 주지 않는 경쟁 고용의 기준에서 비켜간 사람들, 지적 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사업장이다. 바로 옆에 있는 하상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직업재활훈련장이다. 외식업체 취업을 희망하는 장애인들이 현장에서 천천히 배울 수 없는 직업 교육을 이곳에서 미리 받는다. 카페라떼 하나를 배우는 데도 한 달이 걸리기 때문이다.


"엄마, 나도 커서 저렇게 될 수 있겠지?"

하랑에서는 아무도 혹시 더럽지 않을까, 맛이 이상하지는 않을까 의심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친절하게 인사하고 깨끗하게 청소하고 열심히 만들어 내놓으면 한 잔의 커피 값이 되어 한 달의 임금으로 돌아온다. 인근 주민들도 찾고 거래처 빵집 주인도 찾다가, 실제 장애인 고용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었다. 카페하랑은 복지관을 찾은 지적 자폐성 장애인 부모의 쉼터이기도 하다. 장애인 아이를 두고, 우리 아이가 커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수없이 지옥을 오가는 엄마의 마음에도 희망의 싹을 뿌린다.



불편하다고 눈 감을 이유가 없어

커피 맛이 맛있다고 자랑하는 복지관 상근자와 동료 직원의 어깨에 기대 웃던 장애인 종업원. 이들은 남들과 다른 외모, 다른 특성을 가졌을 뿐이다. 빨리빨리 가자고, 1등하자고 떠다밀지 않으면 열심히 자기 몫의 일을 해낼 수 있다. 불 켜진 하랑 카페를 종종 지나며 나는 어쩐지 조금은 안심하게 됐다. 대중교통 안에서 창문에 머리를 계속 찧거나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사람을 볼 때에 애써 눈길을 피하지 않아도 좋게 됐다. 약자가 자신 그대로도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은 참 멋진 세상이라고, 직접 본 눈으로 말할 수 있으니까.


Epilogue

아주 작은 틈, 내가 뛰쳐나간 곳보다 더 큰 세상이 거기에 있었다. 어느새 나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거리 구석구석 작은 틈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버려진 옷들을 모아 파는 빈티지 가게들, 잊혀진 토종 종자들을 모아 보존하고 보급하던 유기농 농가..  어쩌면 나는 다른 세상으로 떠났던 것이 아니라, 대로변만 따라 가느라 보지 못했던 수많은 가느다란 길을 보게 된 것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숨 막히게 달려가던 나를 돕기 위해서, 작은 빛들을 계속 좇고 있는지도 모른다.



** 필자는 사회적 책임 소비를 알리는 웹진(buoy media http://buoy.kr)을 운영해 왔습니다. 카페하랑의 에피소드는 2009년 11월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한 내용입니다. 두 명의 팀원과 함께 독립예술, 자활사업, 소셜벤처, 재래시장 등을 찾아온 웹진은 현재, 보다 많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 오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