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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소비의 동반자/사회적기업

[카페 티모르] 동티모르 공정무역 커피, 그 이야기 보따리


올해 5년째, 동티모르에서 공정무역 커피 산지 발굴과 지속가능한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힘쓰고 있는 양동화 간사가 잠시 한국에 왔습니다. 그녀는 한국YMCA연맹에서 동티모르로 파견 보낸 산지관리 책임스태프입니다. 

그런 그녀가, 지난 3월 8일 카페 티모르 이대점에서 동티모르와 공정무역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양동화 간사 초청 강연’의 시간.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카페 티모르 이대점을 찾았습니다.


[카페 티모르 로고 : 위험에 처한 악어를 구해준 어린이를 등에 태우고 바다를 건너다 티모르 섬이 되었다는 전설을 소재로 제작한 로고, 커피 생두를 감싸고 있는 악어를 형상화 함]


“억척스럽기는커녕 여성스럽지 않냐”며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가볍게 동티모르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했습니다. 잠시 그 현황과 역사를 살펴볼까요?  

수도 : 딜리(Dili) (24시간 전기가 들어오고 인터넷이 가능한 유일한 곳)
인구 : 100만명 (출산율 7.3명) 
통화 : US달러
GDP : 374달러(2007년 기준, 현재는 400달러)

16-20세기  포르투갈 식민지
1942-1945 일본 침략 
1976       인도네시아 점령
1999       독립 위한 국민투표
2002       독립(21세기 최초의 신생 국가)


자연이 키우는 건강한 커피나무

양동화 간사가 있는 사메지역은 수도 딜리에서 124km 떨어진 곳으로 차로 가도 5~6시간(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을 달려야 나오는 곳입니다. 그만큼 외진 곳이죠. 헌데, 왜 그곳을 택했을까요? 그곳은 남들이 발을 디디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죠. 커피나무가 있지만, 수송이나 배송이 어려워서 다른 NGO나 기업이 아예 거들떠보지 않았던 거죠. 커피나무가 있는 장소에서도 접근성이 용이한 곳은 다국적 기업이나 다른 NGO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사메지역에서, 지금 한국에서 마시는 공정무역 커피는 카브라키(kablaki)산을 중심으로 로뚜뚜(rotuto)와 카브라키 마을의 사람들이 채집한 것입니다. 250여 가구가 살고 있다죠. 이곳은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로, 꼭 천궁에 있는 느낌이 든답니다. 뭣보다 태평양 바다가 보이는 무척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것이 양 간사의 설명입니다. 

자, 아름다운 동티모르의 남동부 사메지역에서 자라는 커피나무는 어떨까요. 그늘나무, 즉 쉐이드 트리(Shade Tree)의 호위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고 하네요. 땅은 어떤 농약이나 화학비료로 오염되지 않아, 커피나무는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유기농처럼 자라는 거죠. 자연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야생의 나무. 그래서 재배나 농사라는 말보다 ‘채집’이라는 표현이 더욱 자연스럽습니다. 

“커피는 야생이에요. 때가 돼서 열매가 열리면 사람들이 이것을 채집합니다. 빨간색의 커피열매를 보면 꼭 보석색깔 같아요.”


그녀가 분노한 이유

짜잔, 커피시즌이 오면, 온 동네 사람들이 커피를 따러 갑니다. 양 간사도 마찬가지로 커피를 채집하기 위해 모자 꾹 눌러쓰고 함께 룰루랄라 간대요. 

헌데, 그녀가 속상했던 적이 있었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기에? 

“마을의 유일한 수입원이 커피에요. 다른 농사도 안 되는 지역이죠. 아이들도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커피를 따러 가곤 해요. 교장도 선생도 커피를 함께 가니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다 커피를 따러 가요. 그런데, 어느 단체에서 이걸 보고, ‘아동 노동력 착취’라고 찍어간 거예요.”

그녀는 분노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들이 일하는 것은 강제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하는 자연스러운 가사노동에 가까워요. 그런데 어떻게 이걸 착취라 부를 수 있어요? 나는 노동력 착취라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이들은 과거부터 부족 사회였고, 가족 중심의 사회라는 것을 감안하지 못한 거죠. 아이들은 학교 끝나면 동생을 돌보고 가사 일을 봅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가사노동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거나 못 가는 일은 없어요. 아이들은 그렇게 커피를 따러 가서, 커피 열매를 돈으로 바꿔 과자 사먹기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웃음)”

맥락을 보지 않고, 이방인의 시각으로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댄 것에 대한 그녀의 분노였던 거죠. 자신의 철학과 신념에서는, 그들과 함께 일상을 영위하는 그녀는 그것을 착취하고 보지 않는답니다. 


마을공동체와 거버넌스를 만들다

그녀는 커피 수매하는 날이 즐겁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장터가 열리기 때문이죠. 이날은 마을이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형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족사회였지만, 함께 모여서 거버넌스를 구축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녀가 동티모르에서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가 원로 리더들을 지정한 일이랍니다. 사메 지역엔 10명의 커피 리더가 있답니다. 5명은 원로급, 5명이 행정적 리더인데, 이 원로 할아버지들께서 커피 검수를 하는 주체라네요. 연장자에 대한 공경이 있는 사회라, 이들 5명의 원로를 지정했더니, 의외로 일이 잘 풀렸다는 후일담. 

그리고 커피 수매에 대한 지급방식 설명도 잇따랐습니다. 지급은 일주일 뒤에 하는 것으로 현재 잡혀있다네요. 아니, 왜 바로 그 자리에서 주지 않는가, 하고 분노하진 마세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걸 협상하면서 힘들었어요. 커피 팔고, 내 손에 당장 돈이 없다는 게 불안할 수도 있어요. 이방인인 한국 사람이 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 테고요. 그럼에도 일주일 뒤 지급방식을 정한 것은, 커피 30~40kg을 갖고 와도 몇 달러가 안 돼요. 많아야 십 몇 달러인데, 그렇게 돈을 받으면, 많은 이곳 사람들이 도박을 하거나 술을 마셔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모이면 몇 십 달러가 되니까, 그들에겐 큰돈이고, 그렇게 되면 쉽게 도박이나 술로 쓸 생각을 안 해요. 그러니까,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일주일 뒤 지급방식을 택한 거예요.” 

중요한 것은, 당장 눈앞의 소득증대가 아닙니다. 즉, 많은 돈을 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을 활용하는 법, 돈 관리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그녀는 강조합니다. 물론 지금도 100%가 일주일 뒤 지급방식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개인이나 공동체 모두 거버넌스가 강해질 것으로 그녀는 믿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의 진짜 의의

선한 의도를 갖고 접근했지만, 그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낳으리란 법은 없지요. 사람살이가 그렇다는 건 잘 아시죠? 양동화 간사도 그것을 느꼈답니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제는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처음엔 이런 질문이었죠. ‘우리가 커피로 이 사람 도와줄 수 있을까?’ 지금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커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같이 시설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즉, 시설지원. 그러면서 마을 청년 그룹을 조직했습니다.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죠. 커피에 대한 훈련이 아닌, 자신들만의 자치 조직, 자기 주체화를 위한 조직이었던 겁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마을 할아버지들을 리더로 내세운, 아주 잘한 일을 했습니다. 할아버지 10명을 리더로 내세우고 나선, 갈등도 잘 풀리고 자치회도 잘 돌아가더랍니다. “갈등이 있으면 할아버지들과 함께 의논하고 모든 일을 상의했어요. 시간은 오래 걸리고 배가 산으로 가기도 했지만, 우리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고 원로들이 결정한 것이라, 어른 말 듣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더라고요.”

물론 문제점이 없었던 것도 아니요, 자치 회의가 자리 잡는 데도 몇 년이 걸렸습니다. 사실 이전에는 남 앞에서 자신의 욕구를 내세우거나 다른 사람 의견에 피드백을 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죠. 덕분에 양 간사, 애도 많이 먹고 서운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때 그것을 감추지 않고 바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를 알아가게 됐고, 그 뒤 아무 말이나 던지면서 차츰 자리를 잡아가게 된 거죠. 이와 함께 ‘소득증대-책임감-자립․자치-파트너십 구축’의 사이클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녀는 커피 가공 공정에서 마지막 작업까지 마을주민들이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고 품질을 높이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났던 청년들도 돌아왔고, 새로운 변화도 감지됐습니다. 마을 자치기구들은 스스로 뭔가 할 계획들을 세운 겁니다. 깨어나기 시작한 거죠. 마을운동이 본격화된 것입니다. 

“노동의 가치에 대한 정당한 가격만 지불하는 방식의 공정무역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공정무역으로 돈을 더 받는다고 그들의 삶이 많이 변화하거나 윤택해지지는 않아요. 돈의 가치와 사용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삶에 대한 것도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자립하고 자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이방인이 할 수 있는 최소한만 하고자 했습니다. 나머지는 그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본 거죠. 자신의 삶을 변화하는 주체는 바로 자신이 돼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주력한 겁니다. 눈앞의 소득증대보다 자립과 자치를 통해 소득증대를 순환시킬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동티모르에 있는 진짜 이유였습니다. 시혜를 베풀거나 물질적인 부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죠. 주인의식 함양! 

“내가 이곳에서 뭘 하고 싶으면, 어딘가에서 후원을 받아서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면 이 사람들의 삶의 주체가 누가 되겠어요. 최소한의 계획으로, 직접적인 소득 증대보다 이 사람들이 뭔가 할 수 있게끔 무대를 마련해 주는 것. 그게 제 할 일이라고 봤어요.” 


양동화 간사가 동티모르에서 만든 것

처음에 가서 여성으로서 엄청 수모를 당했던 그녀였습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은 동티모르 사회인데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동물원의 원숭이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녀, 많이 울었습니다. 그녀가 자신들의 영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왕따도 시키고, 밀어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진심으로 대했습니다. 시간은 걸렸지만, 진심으로 돌아오는 게 있었습니다. 그녀가 안착을 한 덕분에, 그곳의 여성들에게도 기회가 생겼습니다.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도 생겼습니다. 아직 완전히 남자의 영역에 파고들진 못했지만, 커피를 고르거나 핸드 피킹을 하는 등 여성들의 지위가 더디지만 조금씩이라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내년에는 동티모르에서 떠날 계획입니다. “올해 5년째인데, 본인들이 할 수 있는데도 나한테 의지하는 부분이 아직 있어요. 나는 거기에 놀러 가는 건데, (웃음) 나한테 의존하는 부분이 있어서 독립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해요. 이젠 엄마 같은 존재가 아니라, 채찍질 하는 사람이 필요한 단계인 것 같거든요. 나는 빠져줘야 해요. 정이 많이 들어서 객관적인 것도 흐려지고 안쓰럽고 예쁘고, 모른 척 해주고 싶은 것이 생기거든요. 이건 서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안 되고, 내가 나오면 더 잘 할 것 같은 확신이 있어요.”

그녀의 후임은 그녀만큼 일하진 않을 거예요. 어디든 처음 가는 사람이 세팅하느라 고생을 바가지로 하는 법이잖아요. 그러니, 후임자는 다소 안심하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커피 프로세스는 현지인들이 알아서 할 것이고, 투명성이나 책임성 등을 부여하는 일을 후임이 하게 되겠죠. 그녀의 표정과 말에선, 공정무역 커피 산지에 대한 자신감은 역력하게 묻어납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동티모르의 다른 산지를 개척할 생각은 없답니다. 모든 현장에는 그 현장만의 특징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이곳에서 했던 프로세스나 노하우가 다른 산지에 그대로 적용되진 않을 거라는 얘기. 

“동티모르 다른 지역, 다른 나라에 간다고 성공할 거라는 확신은 없어요. 일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에게 배우면 답이 보여요. 잘했던 것을 가지고 들어간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고 같이 호흡하면서 뭔가 만들어 내야 해요. 모든 마을, 모든 문화는 그만의 특색이 있고, 자기 색깔이 있고, 그걸 찾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도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지는데 1년이 걸렸어요. 뭔가 성과를 내야한다는 마음만 급했어요. 1년을 지내고 나니, 사람과 문화가 이해되고 나니, 어떻게 접근하고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보였어요. 시간적 한계를 두지 않고 운동적 관점에서 여유를 두고 기다려주고 믿어준 시간이 있어서, 의외로 빨리 된 것 같아요.”

이날, 그녀가 그동안 동티모르에 있으면서 얻은 문장이자, 가장 감명 깊게 와 닿은 말이 있습니다. “나한테는 선택이지만 이 사람들에겐 삶이었어요.” 공정무역, 어쩌면 우리에겐 선택이지만, 그들에겐 치열한 삶과 일상의 모든 것이었다는 것. NGO나 다국적 기업이 되레 마을공동체를 파괴하는 측면도 있음을 그녀는 지적합니다. 

아마도, 그녀가 말한대로 로뚜뚜 마을과 카브라키 마을을 만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을 겁니다. 그녀가 얻었다는 그 문장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 아프다는 그녀. 당신은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카페 티모르 :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공정무역과 착산소비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기업니다. (홈페이지 : http://www.cafetimo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