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 가면 장애우들이 운영하는 카페인 ‘히즈빈스’라는 곳이 꽤 있습니다.
市에서 지원하여 건물을 짓고, 장애우들이 함께 모여 운영을 하도록 한 곳이죠.
처음에 신문과 방송뉴스로 이 기사를 접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장애우들끼리 모여서 하면 좀 어설프겠다. 맛도 별로겠는 걸’
제가 잘 가는 동빈항에도 이 카페가 있습니다.
바다를 끼고 있어서 여름이면 자주 가는 곳인데, 저는 이 카페를 늘 스쳐 지나다녔습니다.
저희는 당시 포항의 중심가에서 가게를 했습니다.
가게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불우이웃돕기, 한 부모 가정 돕기, 장애인 돕기 등등으로 ‘조금만 보태달라’는 사람들을 일주일에 두 번은 꼭 보게 됩니다.
절의 스님을 빙자해서 오는 분도 있고, 할머니들이 단체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거의 돈만 받아가요.
그러다가 한 번은 저희 가게에 장애우 두 분이 물건을 판매하러 오셨습니다.
장애인들이 모여서 공장을 차려 물품을 만든다면서 팔아달라고 오셨더라고요.
그날 가져온 물품은 예술제품이라고 해도 좋을 방향 제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죠.
“장애가 있으면 그냥 돈만 좀 달라고 해도 드릴 건데, 왜 물건을 갖고 오셨느냐?”
그 분이 그러더군요.
“장애인들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충분하지는 않지만 감사한 일이죠. 그리고 건강한 분들도 애써서 돈을 벌고 있는데, 그 돈을 그냥 얻어가면 안 되죠. 그래서 저희들이 만든 제품을 홍보도 할 겸 판매를 합니다. 그러면 사는 사람도 좋고 저희들은 물건을 팔아서 좋고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저는 뭔가로 머리를 치는 듯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장애우들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설사 그들이 일을 하거나 물건을 만든다고 해도 ‘뭐 그냥 그렇겠지’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의 몇 몇 장애우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국가에서 주는 장애인 수당에 의지하여 가족의 힘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죠.
그랬는데 그분의 말씀이 ‘장애우들도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 일이 있는 직후에 저는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그동안 ‘피로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말기 신부전이었어요.
약으로 치료하기에는 늦어버렸고, 투석이나 이식을 선택해야 하는 단계였습니다.
그때 병원에서 알게 된 사실이 투석을 하게 되면 2급 장애인이라고 합니다.
이틀에 한 번씩 피를 걸러야 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고, 제약이 많아서 활동을 못하기 때문에 2급 장애인이 된답니다.
투석이라는 말보다는 2급 장애인이라는 말에 더 충격을 받아야했습니다.
투석을 하기 위해 혈관수술을 하고 나서 ‘2개월 뒤부터 투석을 들어갑니다.’라는 말을 듣고 퇴원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투석을 위한 운동을 시작했고, 동빈항에 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항구에 정박해놓은 배들과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나마 숨통이 트였고, 그곳이 가벼운 산책처럼 운동을 하기에도 좋은 장소였거든요.
그렇게 하여 저는 히즈빈스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그냥 지나쳐갔던 곳인데, 장애인을 예약(?)해놓고 나니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히즈빈스의 차맛은 정말 좋았습니다.
장애우들이 협동하여 운영을 하는 곳이다 보니, 조금 더디다 싶게 서빙이 이루어졌지만 저도 장애인이 될 건데 싶으니 아무렇지도 않더군요.
그냥 나와 동료구나 싶은 마음에 더 친근하게 대하게 되었죠.
그들은 몸이 불편함에도 많이 웃고, 활발했습니다.
그들의 웃음이, 그들이 기분 좋게 만든 차가 제 기분도 좋게 해줘 저는 자주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장애우들이 만드는 제품을 만나게 되었죠.
녹차나 향제품, 비누나 천연샴푸등이 장애우들이 만든 사업장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히즈빈스 한쪽에 진열이 되어 있어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우들이 만든 상품들은 꼼꼼함이 특징입니다.
광고를 할 수 없으니 품질로 승부를 해야 하니까 아주 꼼꼼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만족지수가 높아질 수 있죠.
지금 제가 사는 곳은 시골입니다.
아픈 몸을 치유해보고자 시골로 이사를 했고, 이곳에서 작으나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에서 저는 가장 젊은 사람입니다.
저보다 젊다는 분이 20년이나 연배이니, 저는 우리 마을에서 젊어도 아주 젊은 사람인 셈입니다.
모두 일흔이 넘은 분들만이 사는 마을이지만, 빈 농토는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열심히 농사를 짓기 때문이죠.
도시에 살 때, 저는 다른 제품도 마찬가지지만 농산물도 어떻게든 싼 제품을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시골에 들어와서 어설픈 실력으로 농사를 지어보니, 제가 그동안 잘못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의 어른들은 ‘내 자식을 먹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그러니 유기농으로 짓는 경우가 더 많죠.
그래서 저는 제가 짓지 않는 농작물은 마을 안에서 구입을 합니다.
물론 시장에 가면 큰 가게들이 싸게 파는 농산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료나 농약을 많이 사용했을 것이고, 기왕이면 우리 마을의 어르신들이 지은 것을 사먹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 되니까 마을에서 구입을 하게 되는 거죠.
구부정하게 되어버린 허리로 힘들게 지은 농사인데, 파는 것이 더 힘들어진 것이 요즘 농촌의 소규모 농가들이 겪는 힘겨움입니다.
그것을 함께 덜어보자 싶어서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도 권해줍니다.
어르신들이 정성들여 지은 유기농 농산물이라 모두들 좋아하죠.
다만 대규모 마트에서 사먹는 것보다는 조금 비싸긴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숙련된 기술자들이 대규모로 생산하여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선호합니다.
그렇다보니 생산업체들도 인건비가 싼 제3국가로 공장 이전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그리 좋은 소비패턴이 아닙니다.
윤리적 소비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말일 것입니다.
싸다고 해서 무조건 구입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 제품을 구입함으로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함께 사는 것을 강구할 수 있느냐도 생각해보며 소비를 하면 좋겠지요.
그렇게 되면 생산자 입장에서도 지나친 임금착취도 서서히 사라질 것이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물품을 사면서 당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함께 살아가기의 행복’도 알 수 있으니, 조금 더 넓은 범위의 윤리적 소비를 하는 마음가짐을 우리 모두가 갖게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장애우가 만든 물품도, 나이든 어르신들이 소규모로 거둔 농산물도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우리의 생활 속에 함께 하게 되길 원합니다.
이제 날씨가 좀 서늘해졌습니다.
장애우들이 만든 장갑을 끼고, 갓 심어놓은 배추의 벌레를 잡으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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