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제주도로 휴가가.”
“정말? 좋겠다~”
“근데, 배타고 가. 인천에서..”
“뭐? 왜?? 비행기 표가 없어???”
“아니, 제주 피스 보트(peace boat)라고 공정여행 하는거야…”
“그래도 배타고 제주도 가는 건 좀….”
이렇게 우리의 2011년 여름 휴가는 시작되었다.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간다는
우리의 계획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한결같았다.
“제주도를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가~~~??”
사실, 숙소나 방문하는 곳들을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것까지 얘기를 했다면 아마 우릴 보고 미쳤다고 말했을 지도 모르겠다. 숙소는 배에서 하루, 마을회관과 같은 공동체시설(물론 시설은 나쁘지는 않았다)에서 합숙으로 이틀, 또 배에서 하루, 방문지는 제주도하면 반드시 가 봐야 할 곳들이 아니라 조그만 제주도 마을들(물론 몇 가지 선택할 수 있었지만 우린 마을방문을 선택했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2011년 공정무역 주간을 맞아 덕수궁 돌담길을 둘러보다 ‘제주피스보트’를 알게 됐고, 아내에게 이번 여름 휴가는 나의 생일 선물로 이 보트를 함께 타자고 제안했다. 처음에 아내는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비행기를 타면 1시간, 그리고 렌터카를 빌려 타고 푸른 바다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경관들을 즐기고, 고급스러운 호텔이나 팬션에 머물며 즐기다 오는 일반적인 제주도 여행과는 너무나 다른 여행을 제안했기에 그럴 만 도 했다. 하지만, 몇 번의 대화 끝에 아내는 승낙을 했고, 피스보트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준비를 해 나갔다.
사실 나는 공정여행이라는 것보다는 남들과 다른 여행을 한다는 것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획일화 된 제주도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준비를 하면서 공정무역을 공부했던 나로서는 점점 공정여행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환경을 보호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지역과 현지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여행을 나도 실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 편으로는 정말로 기대되고 출발도 하기 전에 뿌듯함을 느꼈다.
아내는 배를 이용한 장거리 여행이 처음이었고, 나는 중국과 러시아를 여행했을 때 이후 두 번째였다. 배를 타기 위해 인천항에 일찍 도착하여 여행을 함께할 동료들을 기다렸다. 아이부터 나이 많은 어른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점차 인천항 대기실에 모여들었고 드디어 우리는 배로 향했다. 망망한 바다 위에 떠 있는 6000톤 급 큰 배에 트럭들이 실리는 장면도 보고 승선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면서 느껴지는 배의 울렁거림에서 여행의 출발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설레임과 동시에 두려움이 다가왔지만 여행을 떠난다는, 그것도 공정여행을 떠난다는 자부심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인천에서 제주도까지 서해뱃길을 따라 13시간 정도를 달렸다. 인천항을 떠나면서 점점 육지와 멀어지는 광경, 바다 한 가운데 우리 배만 둥둥 떠 있는 광경, 저 멀리 고깃배들이 외로이 홀로 떨어져서 한척 씩 떠있는 광경, 한 여름이었지만 추위를 느끼게 만들었던 바닷바람, 갈매기들과 함께 바다를 달리고 있는 나의 모습, 바다를 떠 달려야만 볼 수 있는 서해의 석양, 사랑하는 아내와 갑판에 앉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의 시간... 비행기에서는 절대로 누릴 수 없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1시간 거리를 왜 13시간 걸려 가느냐는 의문을 풀어 줄 시간들이 배 위에는 마련돼 있었다. 선상과 침실에는 참석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이야기나누고 즐길 수 있는 환경, 평화, 공정한 것을 주제로 한 강연, 콘서트, 체험 등 많은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공정여행은 여기서부터 시작인 듯 했다. 물론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소통이었다.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선상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되고, 토론하고 이야기 나누며 배우고 즐기는 것, 사람을 느끼고 환경과 평화와 공정한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
여기서부터 공정여행은 시작인 것이었다.
13시간을 달려 도착한 제주도의 모습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육지의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점점 다가왔다. 인천에서 떠날 때와는 정반대로 육지와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은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듯 하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우린 가장 먼저 걸으며 제주도를 느끼기 시작했다. 2시간 동안의 바닷길 걷기는 7월 한더위에 중간에 포기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정말 힘들었지만 제주도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후 우리는 제주도의 마을들을 둘러보았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먹는 음식들, 그들이 즐기는 자연, 그들이 살고 있는 생활모습을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갓 잡아 온 해물을 이용한 아침식사는 제주도의 향 그 자체를 느끼게끔 해 주었고, 오름을 보고 내려온 후에는 현지인 가이드의 조금은 어설픈 안내로 우리가 타야할 차량이 있는 반대편으로 내려와 동네주민의 트럭 짐칸에 타고 차량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던 일들은 어찌 보면 아주 큰 불만꺼리였지만 참석한 우리들에겐 그저 우릴 더 웃게 만드는 재밌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존중하며 마을을 걷고 이틀 동안을 생활했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파괴돼 가고 있는 구럼비 바위에서 우린 평화를 외치며 구럼비 바위에 미안해하며 아쉬워했다.
나의 제주도 여행에 한라산, 백록담, 서귀포, 성산 일출봉 등과 같은 제주도의 랜드마크들은 지금 내 머릿속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방문했던 그 곳 사람들과의 만남, 그들의 정이 아직도 남아있고, 함께 여행을 했던 사람들과의 소통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기억들이 생생하다. 또한 이것이 바로 살아가는 재미,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4박 5일이라는 기간 동안 남들처럼 렌터카로 쉽게 쉽게 달려 도착해서 보고 사진 찍고 돌아가는 그런 여행을 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편하게 떠나는 여행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여행이 과연 우리에게 어떻게 남을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스갯소리로 여행하고 남는 건 정말로 사진뿐일까? 이것이 바로 윤리적 소비를 하고자 하는 우리가 가장 먼저 가져야 할 생각일 것이다. 우리가 했던 여행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달랐고 조금은 불편했지만 많은 것을 알게 됐고 느낄 수 있었다.
‘제주피스보트’라는 공정여행을 통해 이제는 단순히 관광으로만 끝내는 여행은 지양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강원도 고성의 왕곡마을처럼 마을공동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전통한옥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등, 어떻게든 현지의 삶을 보려고 하고 그들과 대화하고자 하며 그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윤리적 소비란 기존의 것을 틀렸다고 혹은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비판만 하기 보다는 틀린 것을 알았을 때 틀린 것과는 다르게 소비하는 것, 다르게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생협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고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공정무역 의류, 재활용 의류도 구입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나 때문에 그리고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조금씩 공정하게 변하고 있고 변할 것이라 확신하다. 그래서 조금은 유별나 보일 수도 있지만 계속 윤리적 소비자가 되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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