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뚝.뚝. 벌써 가을을 알리는 비일까.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커피향이 짙게 깔린 카페에 가고 싶다. 그리고 그곳은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커다란 창이 있는 2층 정도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라면 이보다 더 매력적이고, 이보다 더 좋은 힐링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이제 두 돌 된 아이를 둔 엄마다. 늘 아이의 밥상을 신경쓰다보면 정작 나는 밥을 마시다시피 해야 하고, 유모차에서 발 구르는 아이를 향해 우쭈쭈. 우쭈주. 아이를 달래가며 아이 옷을 고르는 동안, 정작 난 심하게 무릎 나온 바지를 입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래봬도 한 때 커피 꽤나 마셔 본 여자고, 멋 좀 부려봤던 여자였다. 이랬던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은 나도 정말 몰랐다. 내 안에 나의 심장, 그리고 또 다른 심장이 뛰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다. 내 자신은 뒷전인 채 아이에게만큼은 최고의 것을 해주고 싶고, 뭘 해줘도 결코 아깝지 않은. 세상의 모든 엄마의 마음은 다 똑같을 거다.
이런 엄마들에게 ‘내 아이’의 먹거리, ‘내 아이’ 피부에 직접 닿는 기저귀, 옷, 크림, ‘내 아이’의 장난감, ‘내 아이’가 읽을 책 등등. ‘내 아이’에 관련한 것들은 소싯적, 매일 아침 얼굴에 발라야 했던 화장품 고를 때의 신중함 그 이상으로 꼼꼼하게 따져보고 선택한다는 사실. 고로 아이의 먹거리는 물론이고 육아 용품에 몹쓸 짓을 하는 이들은 ‘엄마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다.
얼마 전, 한 분유회사의 불미스러운 상품 유통 및 판매 과정을 통해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적이 있다. 갑과 을에 대한 기발한 정의에 재미있게 웃어넘길 수 있던 개그 프로와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짜 ‘갑’과 ‘을’의 관계의 실 모습은 참 씁쓸했다. 불매운동까지 했던 엄마들의 결심은 단지 유행따라 옷을 고르던 마음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 바탕은 모성으로 비롯된 보다 묵직한 마음에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모유 수유를 하던 나는 불매운동에 동참하지는 못했다. 대신 기업의 윤리, 소비자의 윤리적 소비에 관한 기사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불매운동이 아닌 또 다른 방법으로 ‘착한 소비’를 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윤리적 소비란 나의 소비 행위가 다른 사람, 사회, 환경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고려하여 소비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기업과 소비자와의 관계 외에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누군가가 존재하는데, 우리에겐 즐거운 소비가 그들에게는 고통의 굴레가 되는 소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고 소비하자는 것이다. 이는 경제시간에 배운 합리적 소비관에 젖어 그저 같은 물건을 싸게 샀을 때 느끼는 나만의 희열 대신 윤리적 소비로 다른 사람과 함께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기쁨을 맛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거창하고 어려운 것도 같다. 하지만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은 의외로 쉽고도 간단했다. 가령 이렇다.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해 선택하는 것이 ‘다른 아이’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무언가 소비를 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아이’는 어른이 될 수도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부당하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 누군가가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가난에 시달리는 어린 아이는 약자 중 약자가 된다- 아이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발휘해서 지갑을 연다면 보다 쉽게 윤리적 소비에 동참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이로써 난 지갑을 열었을 때 기업을 상대로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는 진정한 ‘갑’이 되는 것이다.
한때 뭇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아이에게 가볍고 편한 나이스한 운동화를 사줬다. 하지만 그 운동화가 만들어 지는 과정 가운데 누군가의 아이는 고된 노역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과연 내가 사랑하는 아이의 발에 진짜 가볍고 편한 것을 신킨 건가 싶고. 혹 세상의 무거운 과제를 안긴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난 때문에 아이에게 일을 시킬 수밖에 없는 어느 엄마의 마음은 내가 느끼는 무거움 그 이상일터. 그러니 착한 소비는 그 무거운 마음을 함께 드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겠다.
아이는 요즘 앞집 형이 준 ‘안돼, 데이빗’이란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교회 쌍동이 형들에게 물려받은 옷을 입고선 신나게 음식을 흘리고, 심지어 땅에 뒹굴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에게 혼나진 않는다. 새 옷이 아니어서 좋은 이유다. 사촌 형의 보물 1호였다는 ‘톰의 기차’는 여전히 ‘칙칙폭폭’ 잘도 간다. 물려받은 것들은 아이가 어떻게 해도 너그럽고 인색하지 않은 엄마가 되게 해주는 것 같다. 안된다고만 하는 책 속 데이빗 엄마와는 달리.
누군가의 것을 물려받고, 자신의 것을 물려주는 ‘내 아이’가 지금 당장은 모를 테지만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나눔이 무엇인지, 함께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차츰 차츰 알아 갈 것이다. 그러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을 나누는 마음도 함께 자라리라.
나의 ‘윤리적 소비’ 실천은 이렇게 소소하다. 이 소소함이 하루 이틀 작은 습관이 되고, 또 누군가와 함께 하다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따듯한 세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여전히 비가 온다. 비록 비오는 거리를 내다 볼 수 있는 카페는 아니지만 공정하게 거래된 착한 커피를 즐기고 있다.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누리게 되는 커피 맛이란.
혹시 이 시간 카페에서 멋진 풍경과 함께 향기로운 커피를 즐길 우아한, 언젠가 엄마가 될 예비 엄마의 그녀들이 있다면, 그녀들에게 착한 커피를 소개해주고 싶다. 착한 커피를 알게 된 뒤에는 지금 들고 있는 커피의 맛이 아이의 고된 노역만큼 쓰고, 창밖의 분위기 있는 비가 그들의 눈물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니. 오늘은 말고, 다음에.....히히.
커피 참 따듯하다. 낮잠을 자고 있는 아들 녀석이 쌔근쌔근 조금 더 자주기를 바라며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즐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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