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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사례

500원이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참사를 막는다

 사진작가 타슬리마 아크흐테르

방글라데시 사진작가 타슬리마 아크흐테르가 찍은 라나플라자 붕괴현장.
1100여 명이 숨진 비극의 현장에 연인으로 보이는 한 쌍의 노동자들이 껴안은 채 숨져있다.
남성의 눈에서 흐른 피가 눈물처럼 번져 있어 보는 이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방글라데시는 의류를 생산·수출하고 한국은 전자제품을 생산·수출하는 것이 상호이득이다.
그러나 지난 200~300년간 국제무역을 지배해온 단순명쾌한 이 이론에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한국이 비교열위 산업인 쌀 생산을 지속하는 것은 손해를 보는 것인가?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논을 갈아엎고 전자제품과 자동차 공장을 세워야 하는 것인가?
의류 제조업에 특화된 방글라데시의 정부와 생산자가 이득을 얻을 수 있겠지만 노동자들에게도 그 이익이 돌아갈 것인가?
그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복지혜택이 늘어날 것인가?
지난달 24일 발생한 건물 붕괴로 11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붕괴참사를 보며 이러한 의문이 생겼다.
 
방글라데시는 세계 최대 의류생산국 중 한 곳이다.
세계 최저 수준의 저임금으로 인해 세계 1위의 의류 생산국인 중국조차 방글라데시로부터의 의류 수입을 크게 늘리고 있다.
 
지난해 방글라데시가 세계은행(IBRD)과 함께 개최한 컨퍼런스 자료에 따르면 주요 의류 수출국들의 평균임금 수준은 방글라데시가 월 43달러인데 비해 캄보디아 61달러, 인도 87달러, 베트남 63~90달러, 중국 150~250달러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저임금을 기반으로 방글라데시는 중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3위의 의류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의류공장(사진 출처:www.unwomen.org)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의 도약은 수백만 노동자들의 희생을 통해 이뤄졌다.
이 나라에는 약 4500개의 의류공장, 350만 명의 소속 노동자들이 있다.
의류제조업체 노동자의 80%는 여성이다.
이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악한 작업장에서 시간당 24센트(약 260원)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대참사는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노동자들이 얼마나 비참한 현실에 놓여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비극적 사례다.
당초 5층으로 건축된 라나플라자는 8층으로 불법증축됐다.
사고 당시 건물이 균열돼 은행과 입주 점포들은 서둘러 철시했지만 의류공장의 사업주는 납기를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을 위험한 건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시아 저개발국 의류산업의 참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에도 파키스탄 카라치의 의류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89명이 사망했다.
사고 당시 4층 건물 전체에 열려 있는 출입구는 단 한 곳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이 근무시간에 맘대로 들락거리지 못하도록 사측이 거의 모든 출입문을 폐쇄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화마에 쫓긴 노동자들이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65명이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등 저개발국 의류산업의 참사와 관련해 이들 국가로부터 의류를 수입하는 나라의 업체와 소비자들은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방글라데시에서 의류를 생산하는 미국의 월트디즈니는 이번 사고 이후 이 나라에서의 의류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갭(GAP), H&M, 베네통, 망고, 월마트, 시어스 등 다른 대규모 업체들은 잔류를 선언했다.
이들은 대신 노동환경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소비자들에게는 어떤 대안이 있을까?
미국 대학생들은 최근 뉴욕, LA, 시애틀 등  12개 도시에서 다국적 의류업체들을 대상으로 ‘방글라데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문제의 의류상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선언했다.

무하마드 유누스 전 그라민은행 총재(사진출처:www.muhammadyunus.org)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사진) 전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총재는 자국 의류산업의 비참한 노동 현실에 대해 한 가지 해법을 내놓았다.
소비자가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이 상품을 생산해 얻는 수익의 10%를 더 부담해 그 돈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쓰이도록 하는 것이다.
 
유누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팔리는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 의류가 한 벌에 35달러라고 하면 이중 방글라데시의 몫은 5달러밖에 안 된다.
나머지 30달러는 상품을 주문생산한 미국 의류업체와 유통업체가 가져간다.
만약 소비자가 방글라데시 사업주와 노동자, 원자재 생산 농민이 나눠 갖는 5달러의 10%인 50센트(약 550원)를 더 부담해 이 돈이 노동조건 개선에 쓰이도록 제도화한다면 방글라데시 참사의 재발을 막는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유누스는 강조한다.
 
그는 다국적 의류기업의 철수는 방글라데시 여성 노동자들을 더 비참한 현실 속에 빠뜨릴 것이라고 지적한다.
시간당 몇 십 센트의 일마저 사라진다면 이들의 가계는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50센트의 의류 가격인상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35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 등 최소 천만 명을 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유누스는 50센트 가격인상과 함께 방글라데시 정부와 기업, 다국적기업들이 노동조건 개선에 나설 것을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방글라데시는 인구 1억6000만 명, 1인당 GDP 700달러의 최빈국이다.
국제경제 구도에서 방글라데시는 의류제조업과 쌀 생산(세계 3위 쌀 생산국)에 비교우위를 갖는다.
장래에 방글라데시도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최소한 수십 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 1억6000만 명은 계속 먹고 살아야 한다.
 
방글라데시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고 선진국 기업들이 철수하는 것이 해답은 아닐 것이다.
고용이 최선의 복지라는 말도 있다.
저개발국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점진적으로 노동조건과 복지가 개선되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소비자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 아닐까 싶다.
물론 ‘껌값’에 불과한 추가 의류구입비용을 더 부담하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추가비용이 원래 목적대로 쓰이는지에 대해서도 감시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방글라데시 같은 세계 최빈국이었던 시절, 한국 역시 저가 의류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졌다.
한국이 현재 전자제품과 자동차 생산에 비교우위를 갖는 발전된 나라가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공순이’ 선배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
우리의 과거는 바로 방글라데시의 현재인 것이다.
 
건물붕괴로 숨진 1100여 명의 영전에 청계천 피복노조 노동자문화학교 문학반이 지은 연작시 ‘청계천’을 바친다. 

맑게 흘러내린 물에 빨래를 했다던
그 옛날 청계천 주변에
나도 시다가 되었다
허물어지는 가슴 위로 드르륵 미싱이 돌고
돈독 오른 사장의 기침소리에
우린 기름칠한 기계처럼 미끄러져
쌓이는 작업량 먼지구덩이 속에
침침해지는 눈동자를 껌벅이고 있었다
종일토록 온몸을 흔들고 흔들어 시다를 하는
여기 살아 꿈틀거리는 힘겨운 고통의 울분이
열 시간이 넘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얄팍한 월급봉투 한숨으로 뒤엉킨다

여인옥 이로운닷넷 복지/국제 부문 에디터
 
Posted by 이로운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