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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힘/윤리적 소비란?

빛 밝혀 드려요, 살펴 가세요

빛 밝혀 드려요, 살펴 가세요 - 서정희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세상 어딘가에서 서로를 돕는 따뜻한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 작년 여름이었다. 인권 교육을 받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와 열흘간을 서울에서 지내고 있을 때였다. 친구네 이모님의 감사한 성의로 아웃백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 잠시 대기 줄에 앉아 있었다.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책장에 책 몇 권이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심심해서 잡은 책이 지식채널e였다. 그리고 가장 처음 읽었던 이야기가 바로 ‘축구공 경제학’이었다.

축구공 경제학의 내용은, 간단히 말해서 수많은 축구공들이 실은 세계 어딘가에서 그 피혁 조각을 피땀으로 한 땀 한 땀 꿰어내는 어린이들이 있기에 축구장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닐 수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중학교 실기시간에 방석 꿰는 것도 굉장히 귀찮은 일인데 그 일을 쉼 없이 계속 해야만 하는 어린이들이 받는 돈이 얼마라고 했더라. 150원인가. 세상에 내 방구석에서 침대 밑 한번 쓸어주면 나오는 돈이다. 그러나 축구공은 내 방 방바닥을 땀이 나게 뒤져도 살 수 없다. 하루에 그 몇 천배가 넘는 돈을 굴릴 대기업에서 중노동으로 눈이 침침해지고 허리가 굽을 아이들에게 비웃는 낯으로 150원을 던져 줄 생각을 하니 분통이 터졌었다. 그리고 회한이 드는 것도 금방이었다. 인권 공부를 하겠답시고 교통비 물어가며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오고, 아웃백에서 기름진 밥을 먹던 나는 저 멀리 제 3세계의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인권까지 버려가며 제 가족들 밥 한 끼를 위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제야 깨닫고 있었다.

대기업은 이윤 추구를 극대화하기 위해 소비자와 생산자를 잇는 중간지점에서 최대한 큰 이익을 보고자 한다. 물건을 만드는 개개인은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팔수도, 광고를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 역할을 대신해 주면서 갈고리 같은 손으로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손에서 물건을 긁어 간다. 그리고 본전이나 되는지 모를 돈을 던져 준다. 그 대기업의 악독한 역할 수행에 분개한 사람들이 공정무역을 만들었다. 고된 노동에 지친 어른들과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들이 스스로 일어서게끔. 그 손을 잡은 팔에 힘을 얹어 주는 건 우리들 소비자의 몫이었다.

내가 구입하는 물건의 출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주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가 생협이었다. 생협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이미 중학교 때의 일이다. 친구네 어머니가 생협 회원이셨다. 제 집 드나들 듯 하던 그 친구 집에는 늘 맛있는 과자나 말린 과일 등이 있었다. 물어 보니 생협에서 샀다고 하시더라. 우리 밀 우리 농산물로 만들었다는 광고 문구가 들어 있는 과자 봉지를 보면서 왜 그때는 이러한 것들에 관심 가지지 않았나 오히려 그게 더 궁금했다. 그저 몸에도 좋아 보이고 맛도 좋은데 왜 우리 엄마는 여기에서 물건을 안사나 이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대학생이 되어 청주 YWCA의 대학생 회원으로서 활동하면서도 생협은 내게 친숙했다. YWCA에서 다루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그 때부터 본격적인 윤리적소비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구입했던 것이 동티모르 공정무역 커피였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께 맥심과 같은 흔한 것 대신 생협에서 친환경적인, 거기에 덤으로 생산자에게 제 값 주고 서로 행복한 소비를 한 커피를 맛보게 해드리고 싶었다. 프림도 설탕도 들어있지 않은 공정무역 커피는 원두만으로도 깊은 향이 나는 진국이었다. 당연히 그 날은 어머니한테 커피 잔이 보일 때마다 예쁨 받았다.

청주 YWCA에서 부모산 가족 등산 대회가 있었던 때에는 생협에서 따로 부스를 꾸려 가족 단위의 홍보를 벌이기도 했었다. 나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부스 한편에서 시원한 친환경 감귤 주스와 과자, 공정무역 커피를 팔기도 했었고 또 바삐 뛰어나가 자녀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부모님들께 광고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또 다른 부스에서는 생협에서 나온 선생님께서 환타나 그 외에 탄산음료에 들어가는 식용 색소가 실은 위 속을 얼룩덜룩하게 물들이는 아이들 건강 문제의 주범이라는 것을 간단히 밝혀주는 실험을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기도 하셨다. 딱히 바람잡이 노릇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귀동냥을 하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흥분하면서 실험에 집중했었다. 봉사활동이 끝나고 난 후에 실무자 분들이 수고했다며 싼 값에 커피를 팔아 주셨을 때에는 또 집에 들고 가면 어머니께 칭찬받겠구나 하는 생각에 입 꼬리가 내려올 줄을 모르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생협이 내게는 기쁨이라는 말의 동음이의어나 같았다. 행복이었고, 뿌듯함이었고, 또한 어느 순간부터는 생활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게 되었다.

일상 속에서 지나쳤지만 깨닫고 보니 착한 소비의 길목이었던 두 번째는 올리(ALL利)였다. 생명사랑 올리는 청주 YWCA에서 출범한 사회적 기업이다. 햄버거를 팔고 있지만 패스트푸드는 아니다. 제 정체성을 배반한 이 햄버거는 사실 슬로우 푸드에 가깝다. 우리 밀로 만든 빵에 우리 콩 비지로 만든 페티가 올리버거의 주재료이다. 친환경 음식은 비싸고 맛도 밋밋하다는 게 보통의 생각인데, 올리버거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 YWCA의 대학생 회원들은 항상 배가 고플 때마다 이곳에서 허기를 달랜다. 가장 빈곤할 시기인 대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충분히 생각해주면서도, 굶주릴 때마다 생각나는 중독적인 맛을 가진 곳이 흔한가. 거기에다 몸에도 좋으니 금상첨화다.

매 월 둘째 주 토요일마다 시내에서 청주 YWCA가 주관하는 아나바다 장터에서 올리버거는 가장 인기가 좋은 상품이다. 그곳에서 판매 봉사활동을 하면서 담당 실무자 분께 올리버거에 관련된 만화를 그려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었다. 고민해 본다고 했었다. 그 고민은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왕 그리게 된다면, 올리버거의 많은 장점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체험수기에 공모를 하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생협도, 올리도 모두 내게는 소중한 이름이다. 무엇도 모르고 제 좋을 대로 소비를 하던 부끄러운 일상에서, 나도 이렇게 작은 손이나마 세상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데 익숙해지게끔 만든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21살의 대학생이다. 이제 갓 걸음마를 떼는 어린아이처럼 세상의 아름다움을 더듬더듬 찾아내고 또 스스로 그러한 모습이 되고자 가까스로 발을 딛는, 새내기 운동가이다. 이 뒤뚱뒤뚱 비틀어지고 덤벙거린 걸음도 걸음이라고, 내가 걸어왔던 지난 궤적에 착한 소비의 경험도 남아있었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세상을 밝히기 위해 켜는 불빛은 종이컵 안의 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걸어왔던 길을 더듬어 그 길목에 등불 하나 밝혀 두고 싶다. 어디에선가 또 나처럼 세상에 눈멀고 귀먹은 누군가에게 길잡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지나는 이마다 밝혀둔 등불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빛이 오늘의 우리를 보듬어 주기를.

빛 밝혀 드려요, 살펴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