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언어 통역사
대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이 처음 업무를 맡았을 때 토로하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사회공헌 파트너들 즉 정부, 시민사회의 말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이 이해가 안 간다는 거죠. 하긴, 서로 목적도 문화도 다른 조직의 사람들이 만났으니 당연히 회의방식부터 실행하는 방식까지 ‘사회적 언어’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정부와 시민사회에는 기업이, 기업엔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나아가야 할 중요한 사회 일원입니다. 서로 사회적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사회공헌 담당자는 어찌 해야 할까요?
대기업 사회공헌 9년차의 ‘달인’ 김도영 선생은 그런 분들께 이렇게 조언합니다.
“사회공헌 사업 초기에는 먼저 ‘공감’을 끌어내세요.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추진하는 방식에 대해 서로 토론하면서 서로 공감을 하게 되면 서로 다른 문법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요. 그러면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열려요.”
행복나눔재단 설립 등 수두룩 빽빽한 ‘공헌’을 이끌어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상 등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하신 사회공헌의 달인 김도영 SK브로드밴드 사회공헌팀장의 경험과 꿈을 좀더 들어보시겠어요?
* 특징 : 1988년 유공 시절에 입사해 사장실과 아트센터 나비(nabi) 기획실장을 지낸 SK맨. 2004년 Sk텔레콤 사회공헌팀장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실무를 수행하면서 정부-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력’을 취득.
* 주요업적 : 행복나눔재단과 SK사회적기업 사업단 설립, 행복한도시락센터/행복한학교/행복한녹색재생 설립 등 사회적기업 실무, 1318해피존 설립/대학생자원봉사단 SUNNY 발족/해피스쿨 설립 .보건복지부장관표창/고용노동부장관표창/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표창
SK 브로드밴드가 창업한 사회적기업 ‘행복한 녹색재생’을 궤도에 올리기. 인터넷 중독 벗어나기 프로그램 ‘해피인터넷’과 60개소 공부방 대상 지원사업 ‘해피IP TV’, 개인과 조직의 전문성 살린 ‘프로보노 자원봉사’ 등 사회공헌을 발전시키기. 사내방송 통해 회사 안팎의 정보과 정서를 공유하기.
2011년 11월초에 론칭한 ‘행복한 녹색재생’이 월별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것이에요. 모뎀, 셋톱박스 등 각종 단말기를 세척하고 점검해 재사용하는 업체인데요, 장애인 15명을 포함해 탈북자 다문화가정, 신용불량자 등 취약계층이 모여 58명의 일자리를 만들고 있지요.
더 즐거운 건 ‘페어런팅 서비스 그룹(Parenting Service Group)’에 참여한 SK 직원들의 변화입니다.
취약계층 고용형 사회적기업의 경우, 경영 정상화가 내부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게 현실이죠.
그래서 사회적기업 내부에 부족한 법무, 재무, 홍보,기획 등 각 분야별 전문직원으로 자원봉사단을 구성해 매달 함께 모였어요. 이분들이 처음에 자원봉사할 땐 ‘이런 거 왜 하냐’고 했는데, 이젠 회의자료까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만들어옵니다. 기업관도 달라졌어요. 보통 영리 기업에서 오래 일하면 ‘기업의 이윤 극대화’가 삶의 목표가 됩니다. 근데 사회적기업 경영자문을 하면서 사회에 대한 눈이 열렸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단순히 ‘돈 버는 일’이 아니라 ‘사회에 행복을 늘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거죠. 사회공헌 참여는 샐러리맨을 ‘사회적 샐러리맨’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즐거움은 강아지를 보는 일이에요. 봄이, 와룡이가 새끼를 두 마리 낳아 여름이, 가을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애비인 와룡이를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전 주인이 애견훈련소에 방치해놓고 돌보지 않아 거의 유기견이 될 뻔한 녀석을 처음 입양 받았을 때만 해도 사람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경계하면서 눈을 흘겨서 보기가 딱했거든요. 흰자위가 검은자위보다 많이 보일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젠 사람을 정면으로 응시해요. 그러니 비숑프리제답게 눈이 까만 단추처럼 반짝반짝하더군요. 우리 개들 지켜보니 반려견들이 하고 싶어하는 게 딱 하나더군요. 동거자와 마음을 나누는 것, 가식 없이 순수한 사랑을 주고 동거자한테도 요구하는 것이요.
2004년부터 사회공헌 업무를 했습니다. 벌써 9년째네요.
유공으로 입사해 ‘기업’에만 빠져살았었죠. 회사 바깥 세상에 대한 이해가 일천했어요.
기업의 사회적책임 파트를 담당하면서부터 사회의 진정한 행복이 뭔지, 회사의 혹은 내 삶의 진정한 행복이 뭔지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찾은 답이요? 음, ‘사랑’이랄까요. 사회공헌 활동으로 기업 바깥 사회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모든 인간에겐 사랑을 나누는 기본 본능과 욕구가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걸 안 채워주면 한없이 공허해지는 게 삶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 사회공헌 사업은 단순히 돈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삶을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원해요. 예를 들어 인터넷 중독 벗어나기 프로그램 ‘해피인터넷’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인터넷 중독인 청소년들을 보면 인터넷 속에서 소속감, 자아실현감, 정체성을 얻고 있어요. 가족 소통이 없어 소외감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주로 많죠. 이런 관계는 표류하는 조난자가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비슷해요. ‘해피인터넷’은 한국정보문화진흥원 그리고 한국건강가족진흥원과 함께 인터넷 중독인 아이들이 가족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합니다.
나눌 때, 함께 할때 더 행복하고 더 발전한다는 역설적 진리를 기업과 우리사회에 확산시키고 싶어요.
내것만을 위해 사는 삶과 방식을 벗어나서 우리를 느끼고 공감하면서 조금씩만 더 노력한다면 우리사회의 아니 우리 인류의 현안 문제들이 훨씬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개인의 삶에 기업이 미치는 영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큽니다. 기업의 변화를 통해 세상이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선한 일에 동참하여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일이라기 보다는 이런 생각을 하는 데에 영향을 준 사람은 있어요. 아쇼카의 빌 드레이튼 대표입니다.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다른 지도자들과는 달리, 이 분은 개인의 ‘공감(empathy)’을 이야기합니다. 사회를 바꾸려면 결국은 사람을, 마음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2010년 방한했을 때 이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요. ‘세상의 변화는 한 사람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이나 그러한 한 사람을 찾기위해 헌신한 수십년의 노력과 성과. 결국 ‘변화는 우리 마음 속의 공감능력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은 범인(凡人)을 넘어선 것처럼 보였어요.
전 사회공헌 활동을 추진함에 있어 ‘정부-시민사회-기업’의 협력 모델을 구축하고자 그동안 나름대로는 꾸준히 노력했어요. 구상은 그럴듯해 보였지만, 실제로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언어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요.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풀어가는 방식과 지향하는 목표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였어요.
회의 때마다 갈등의 연속이었지요. 어떤 실무자들은 회의하다 말고 엉엉 울기도 했어요. 일하다가 우는 모습을 보니, 멘붕 그 자체였지요. 끈질긴 협의를 이어나가던 중 정부, 시민사회, 기업이 각각 문법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과정에서, 사업초기부터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추진하는 방식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회공헌업무를 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조직을 설득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실현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이 존경스럽고 내 자신이 한없이 작고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주말에 사회적기업 컨설팅을 해주는 프로보노 봉사자, 자신이 속한 단체의 신념을 벗어나 대기업과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NGO 실무자, 새로운 시도를 정부기관 내에 알리고 정책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공무원. 이런 분들이 바로 우리사회의 히어로가 아닐까요?
김도영 팀장이 말하는 사회공헌의 3층위
대기업 사회공헌 종사자 중 가장 오래 사회적기업 지원사업을 하셨습니다. 사회공헌 담당자들한테 들려주고 싶으신 말씀은?
기업의 사회공헌에는 3개의 층위가 있습니다. 첫번째 층위는 사회가 요구하는 ’1차적 니즈’를 충족하는 활동입니다. 외부에서 요구 받은 협력사업을 한다거나, 금전적으로 기부 활동을 하는 것이지요.
두번째 층위는 기업이 주체가 되어 사회문제 해결에 구조적,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입니다. NGO나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예를 들어 연계기업으로 사회적기업을 창업해 육성한다든가-에 자원과 역량을 배분함으로서 사회에 공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자면 사회공헌 담당자가 외부 즉 사회 문제를 잘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외부와 내부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경영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세번째 층위는 최고경영자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경영에 체화시키는 것입니다. 즉 사회의 행복 증진을 기업 가치 창출의 핵심과제로 삼는 것이죠. 최태원 SK 회장이 가고자 하는 길이 그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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