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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소비의 동반자/협동조합

세종대 생협 쫓겨날 판…“학교가 학생 주머니까지 넘보나”

세종대 생협 쫓겨날 판…“학교가 학생 주머니까지 넘보나”

세종대 생협에서 운영하는 편의점 모습. 외주업체가 운영하는 학생회관 편의점보다 커피와 생수, 우유 등의 음료 값이 40%가량 싸다. 1만원씩 출자한 3000여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세종대 생협의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99%의 경제] 협동조합이 싹튼다

➊ 동네빵집 생존 해법은

➋ 동네 생협, 이마트에 도전하다

➌ 한국의 몬드라곤, 원주를 가다

➍ 청년들아, 협동조합 가입하자

➎ 한국의 협동조합 시대를 열다

“협동조합에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억눌렸던 훌륭한 작업능력이 어머어마한 힘으로 분출한다”(앨프리드 마셜). 젊은이들이 기업가정신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협동조합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대학의 사적 소유권을 내세워 대학생들의 가벼운 주머니를 위협하는, 세종대 생협 사태 현장도 고발한다.

가난한 학생의 주머니보다 대학의 부를 먼저 생각한다면? 좋은 대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여러 대학에서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의 부담을 덜고 건강한 식단을 제공하려는 자력갱생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학생과 교직원들 스스로 생활협동조합(생협)을 설립해, 학내 매장 운영에 나서고 있다. 무작정 대학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는 까닭이다.  

세종대 생협은 2001년에 일찌감치 설립된 대학 협동조합의 벤치마킹 모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위기를 맞고 있다. 자칫, ‘세계협동조합의 해’에 캠퍼스에서 쫓겨나는 협동조합 1호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일 낮 서울 군자동 세종대 캠퍼스의 교직원 식당. 이영재(경영학과 4학년)씨는 “생협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매일 현미밥을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며 “매일 이 식당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같은 학과의 조아라씨도 “외주업체 식당보다 생협 식당이 값도 싸고 반찬도 더 좋다”고 거들었다. 생협 조합원이기도 한 두 학생은 “생협이 제공하는 학생들의 택배 물건을 대신 맡아주고 사물함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서비스도 애용하고 있는데, 학교 쪽에서 생협에 철수를 요구한다니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세종대 쪽은 지난해 생협 철수를 요구하는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최근 항소심 법원에서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세종대 생협에서 운영하는 식당·편의점의 운영 실상을 돌아봤다. 학생들에게 인기있는 왕돈까스 가격이 3200원으로, 학생회관에 입주해있는 외주업체 식당(3500원)보다 저렴했다. 고구마돈까스는 3200원(생협)과 4000원(외주업체)으로, 가격 차이가 더 컸다. 생협에서는 학생들의 요리경연대회를 열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도 한다. 김치치즈볶음밥브리또와 커틀렛김밥이 올해 발굴한 ‘작품’이다. 세종대 생협의 남진상 기획관리팀장은 “우리는 식당에서 화학조미료를 일절 쓰지 않고, 국내산 식재료를 쓴다”며 “생협의 수익보다 학생들의 건강과 주머니 사정을 먼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쪽 생협철수 소송 이겨

외주업체에 운영권 넘길 듯

학생들 “값싼 물건 좋았는데

철수 요구 너무 안타깝다”

전국 대학생협 모두 29곳

전체 매출액 1585억 달해

편의점 물품의 가격 차이는 훨씬 두드러졌다. 생협 편의점에서 1100원인 코카콜라가 학생회관 내에 입주한 외주업체에서는 1500원이었고, 같은 브랜드의 생수는 400원과 750원으로 두 배 가까이 가격 차이가 났다. 여행용 티슈는 생협이 400원, 외주업체는 700원이었다. 우유, 요구르트, 커피 등 7개 음료와 여행용티슈를 구입해 총액을 비교해보니, 생협 매장(6800원)과 외주업체 편의점(9750원) 간에 무려 40%의 가격 차이가 났다. 대학에서 외주업체에 높은 임대료와 기부금을 받아들이고, 그 업체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는 공생구조의 ‘패악’이다. 남 팀장은 “생협 편의점에서는 구매원가에 30% 이하의 판매 마진을 붙이고 식당에서도 100원을 올리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외주업체는 다르다”고 말했다.

세종대의 박해일 총무처장은 “모든 매장에서 생협을 철수시켜 외주업체로 넘기겠다는 뜻은 아니다”면서 “시설이 낙후된 일부 매장 운영권을 학교에서 넘겨받아 직접 운영하고 인건비 등 경영의 몸집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협과 조합원들은 결국 목 좋은 매장의 운영권을 대학이 가져갈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생협은 최근 성명서에서 “학생들의 돈으로 자산을 불려온 대학이 이제는 학생들의 밥값마저 넘보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국대학생활협동연합회의 이미옥 조직교육과장은 “사유재산의 주인이라고 생협의 존폐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일이 아니라 생협의 공익성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며 “협동조합의 젋은 일꾼을 배출해낸 모범사례인 세종대 생협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세계협동조합의 해가 무색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종대와는 달리 최근 대학가에서는 협동조합 열기가 높아지면서 지난해 이후에만 모두 8개의 대학 생협이 새로 설립됐다. 1990년 조선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국에 세워진 대학 생협은 모두 289곳에 이른다. 전체 매출액이 1585억원으로, 대학 1곳의 평균이 50억원을 넘어섰다. 국립대 생협이 다수이지만, 연세대와 이화여대, 경희대, 숭실대, 한국외대 등의 사립대에서도 생협을 운영되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와 충남의 목원대에서도 올해 안 생협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글·사진/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